[단독]사용기한 지난 의료기기…'자체 실험'으로 승인한 인천의료원

공공의료기관인 인천광역시의료원(이하 인천의료원)이 사용기한이 지난 의료기기를 사용해 수십명에게 혈액검사를 했지만 이를 '조용히' 넘어가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의료원은 오히려 '사용기한이 지난 장비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규정을 변경해 '셀프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다. 관련 징계도 담당자 등으로 한정돼 적절성 논란도 예상된다.

사용기한 지난 채혈관 사용…직원 항의하자 '규정 변경'

지난해 9월 인천의료원에서 사용기한이 지난 진공채혈관이 발견됐다. 기한이 지난 채혈관에는 이미 환자들의 혈액이 담겨 있었다. 독자제공

2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의료원은 지난해 9월 사용기한이 2주~한 달가량 지난 6ml 용량 진공채혈관 10여 개를 환자들에게 사용했다. 진공채혈관은 채혈 시 사용하는 플라스틱 재질의 용기다. 환자 몸에 주사기를 꽂은 뒤 진공압을 이용해 혈액을 빨아들이는 의료기기다.

문제를 발견한 직원들은 의료원 측에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의료원은 오히려 사용기한이 지난 채혈관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규정을 변경했다.

올해 1월 변경된 지침에는 '유효기간 내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엔 담당 부서와 안전성 등을 검토한 후에 (사용기한이 지난 진공채혈관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판단의 근거는 자체 실험이었다. 사용기한이 지난 진공채혈관과 정상 채혈관을 사용해 환자 6명의 혈액을 분석했고, 결과에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담당 과장과 진료부원장, 인천의료원장의 승인을 거치며 결국 지침은 변경됐다.

실험 대상자에는 외국인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실험을 위해 환자 동의 없이 추가 채혈을 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안전성 낮고 검사 결과 달라져…"환자에게 치명적"


진공채혈관 논란이 커지자 인천의료원은 자체 실험을 통해 '부득이한 경우, 사용기한이 지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내부 규정을 변경했다. 정성욱기자

업계에서는 인천의료원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유 대리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6명에게 먹여본 뒤, 문제가 나타나지 않자 납품해도 된다는 주장과 같다는 것이다.

우선 6개에 불과한 표본만으로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의료제품의 안전성을 판단하기 위해선 연령별, 성별, 질환여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인천의료원의 실험은 보여주기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인은 "6명을 실험한 결과만으로 안정성을 논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연령과 성별, 환자가 가진 기질도 각기 다른데 그런 특성을 모두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용기한이 지난 제품은 무엇보다 환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기한이 만료되면 진공채혈관 내 압력도 서서히 떨어진다. 이럴 경우 검사에 필요한 혈액량을 뽑지 못할 수 있다.

해당 진공채혈관을 유통하는 업체 관계자는 "사용기한이 지나지 않은 채혈관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원칙"이라며 "진공채혈관은 사전에 설정된 진공압력으로 정량 채혈을 하는 의료기기인데, 기한이 지날 경우 진공압도 서서히 떨어져 채혈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혈관 내부 시약이 굳는 문제도 있다. 채혈관 안에는 혈액을 혈구와 혈청으로 나눌 수 있게 혈액 응고를 촉진하는 시약이 들어있다.

사용기한이 지나면 시약이 굳고 시약에 곰팡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며, 채혈 시 피가 역류할 우려가 있다. 이같은 내용은 일선 병원에서 실시하는 기본 교육에 포함된 내용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사용기간은 멸균의료기기 등 안전성과 유효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간을 정하는 것"이라며 "사용기간이 지난 제품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증하기 어렵다"고 경계했다.


꼬리자르기 했나? 담당자 문책에 그쳐…인천의료원 "잘못 인정"

인천시와 인천의료원은 사태가 커지자 뒤늦게 담당자 등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다. 사용기한이 임박한 것을 알고도 지시한 담당자, 지시를 받고 사용한 실무자가 책임을 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의료원이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하고 꼬리자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직원들만 문책하고, 쇄신은커녕 관련 지침까지 바꿨다는 것이다.

한 의료인은 "환자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재발 방지책을 내놓고 병원 차원에서 쇄신을 해야 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인천의료원은 직원에게만 징계를 주고 오히려 지침까지 바꿨다"고 말했다.

인천의료원은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인천의료원 관계자는 "사용기한 만료가 임박한 채혈관을 직원들에게 사용하도록 지시하긴 했다"며 "사용기한 지난 제품을 사용한 것도 맞고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일도 맞다"고 말해 해당 조치가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진공채혈관 1개당 100원꼴인데 그걸 아끼겠다고 사용기한이 지난 것을 계속 쓰라고 한 적은 결코 없다"며 "변경된 지침에도 사용기한 지난 의료기기를 무조건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에서 검사에 문제가 없다는 데이터와 전문의 승인이 있을 경우로만 한정했다"고 반박했다.

부정 채혈 의혹에 대해선 "환자들에게 실험 사유를 설명하고 추가로 채혈을 하겠다고 동의를 구했다"며 "외국인 환자의 경우에도 요즘 다 한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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