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유족·총장 첫 간담회…"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할 것"

청소노동자 유족 사건 이후 서울대 총장과 첫 간담회
오세정 총장 "타인 존중감 부족,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할 것"
"서울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하라"…연서명에 8000명 이상 참여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시민 1300여명 집단 진정 제기"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열린 청소노동자, 유족 등과의 간담회에서 숨진 청소노동자의 남편인 이모씨와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대학교에서 지난 6월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것과 관련, 오세정 총장이 청소노동자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이 팀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다. 오 총장은 학내에 타인 존중 분위기가 부족했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전체 교육'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 총장과 청소노동자, 유족들은 5일 오전 서울대 행정관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재발 방지책 등을 논의했다.

오 총장은 "이런 자리를 일찍 마련하려고 했지만 그동안은 고용노동부 인권센터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며 "조사 결과가 나왔기에 유족에 전화 드렸고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고인과 이번 사안으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 여러분께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 말씀을 전한다"며 "입장문에서 밝힌 대로 앞으로 대학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학내 노동자 전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에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타인에 대한 존중감이 사회에서 서울대에 바라는 것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사회에서는 제도적 인정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을 동료, 구성원이라고 느껴야한다"고 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열린 청소노동자, 유족 등과의 간담회에서 숨진 청소노동자의 남편인 이 모 씨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노동부는 서울대 기숙사 안전관리팀장 B씨가 청소노동자들에게 필기시험과 회의용 복장 등을 강요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개선책 및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도록 지도했다.

이날 참석한 고인의 남편이자 서울대 노동자인 이모씨는 "이 자리가 소나기를 잠깐 피해가길 바라는 자리는 아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8년 10월에 학교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동안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등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임금교섭에 들어갈 때마다 느끼지만 학교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측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는 동안 유족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학교 판단이 조금이라도 빨랐으면 저희 가정이 우격다짐으로 뭔가 얻어내려는 불쌍한 사람들로 비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례가 끝나고 직원 중 한 명은 전화가 와 조의금을 돌려 달라고 하기도 했다"라고 증언했다.

이씨는 숨진 아내와 가정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그는 "저희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고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이었다"며 "막내딸의 울부짖음은 지금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내와 같이 일한 근로자들이 용기 내서 증언했는데, 이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학교의 조치가 가장 필요하다"며 "정년 때까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청소노동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며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오 총장은 "노동청 조사는 근로기준법에 어긋난다는 것인데 조금 더 넓게 근로자의 인권도 보살피겠다. 기숙사에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기숙사만의 문제가 아닌 많은 근로자의 문제"라며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조직문화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장기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CBS노컷뉴스와 만난 유족은 "오늘 발언을 안 한 근로자들도 표현을 못했을 뿐이지 억울함과 아픔을 가진 분들"이라며 "총장님이 명예를 걸고 말을 했고 개선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는 입장이니 지켜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 위한 연서명 전달…'인권침해' 조사해달라 집단 진정도


간담회에 앞서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는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연서명 결과를 발표했다. 임민정 기자

간담회에 앞서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는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연서명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이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진행한 '처우 개선 요구 연서명에는 개인 8305명과 단체 312곳이 참여했다. 이번 연서명 결과는 청소노동자 유족을 통해 오 총장에게 전달됐다.

노조 측은 기자회견에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청소노동자가 사망한지 38일 만에 공식 사과를 했다"며 "총장의 사과는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 △학교의 책임 인정과 사과 △노사 참여 산업재해 공동 조사단 구성 △직장 갑질 관리자 징계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 및 노동조합과 대화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관리 방식 개선 및 인력충원을 비롯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밖에 청소노동자의 인권침해 등을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집단 진정이 이날 인권위에 제기되기도 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은 지난달 30일까지 모집한 일반 시민 1382명과 이씨의 동료 4명이 이날 오후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집단 진정에는 이씨의 유족도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정인들은 학교 측의 청소업무와 상관없는 영어 시험문제 출제·성적공개·복장에 대한 점검 및 평가 등으로 이 씨와 동료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이 침해됐는지 조사하고 시정 권고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진정을 진행하는 최혜원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헌법에서 보장된 인격권이라든지 행복추구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의 보장,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의 보장과 같은 인권 부분에도 침해가 있다고 생각해 이 부분까지 판단을 받고자 진정을 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은 고용노동부에서도 판단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 관계 중 일부만 판단했다는 생각을 한다"며 "예컨대 시험 성적을 공개했는데 이 부분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