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도쿄 레터]김경문의 "아쉽지 않다"와 김연경의 "안타깝다"

'끝까지 최선을' 6일 일본 도쿄 아리아키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브라질과 4강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도쿄(일본)= 이한형 기자

이틀 동안 도쿄올림픽 4강전 2경기를 봤습니다. 정확히는 3일 동안 3경기입니다. 야구와 배구입니다. 4일 한국과 일본의 야구 4강전, 5일 역시 한국과 미국의 야구 패자 준결승, 6일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4강전입니다.

결과는 모두 같았습니다. 아쉬운 패배, 야구 대표팀은 숙적 일본에 2 대 5로 진 데 이어 '야구 종가' 미국에도 2 대 7로 졌습니다. 여자 배구 대표팀도 우승 후보 브라질에 세트 스코어 0 대 3(16-25 16-25 16-25)로 승리를 내줬습니다.  

하지만 결승 진출 무산이 결정된 경기 뒤 인터뷰에서 받은 느낌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야구 대표팀 김경문 감독과 배구 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그리고 주장 김연경(중국 상하이)의 인터뷰입니다.

김 감독은 미국과 경기 뒤 이른바 '금메달' 발언으로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사실 이번에 올 때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그런 마음만 갖고 오지는 않았다"면서 "매 경기 국민들과 팬들에게 납득이 되는 경기를 하자고 마음 먹고 왔는데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팬들은 야구 대표팀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했는데 감독이 할 말은 아니라면서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의 전력은 13년 전 금메달을 따냈던 베이징올림픽과 비교하면 살짝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일부 선수들의 코로나19 방역 수칙 위반으로 대회 직전 멤버가 교체되는 돌발 변수까지 생겼습니다. 수년 전부터 자국 올림픽에서 의욕적으로 우승을 준비해온 일본과 힘에서 앞서는 미국에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팀을 이끄는 사령탑의 "꼭 금메달을 따러 온 것은 아니라 아쉽지는 않다"는 발언은 국민들의 성원과 바람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제 무대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본인의 꿈과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라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원하는 겁니다. 그들의 활약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 요코하마(일본)=CBS노컷뉴스 이한형 기자

물론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승리 지상주의에 대한 달라진 스포츠계의 시각으로 국민들도 패배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기, 투지를 보이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 준열한 심판을 가합니다. 감독이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쉽지 않다"고 말했는데 과연 온 힘과 정신을 다해서 경기를 치른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본, 미국과 4강전은 무리한 투수 운용 등 벤치의 실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입니다.

여자 배구 4강전 뒤 인터뷰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론 여자 배구 대표팀도 4강전에서 졌습니다. 그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완패였습니다. 세계 랭킹 2위의 강호 브라질은 주전급 선수 1명이 금지 약물 양성 반응으로 갑자기 짐을 싸는 변수에도 흔들림 없이,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된 듯 엄청난 경기력으로 세트 스코어 3 대 0 완승을 거뒀습니다.

라바리니 감독과 김연경은 패배를 시원하게 인정했습니다. 라바리니 감독은 "브라질과 레벨이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패배를 아쉬워 하기보다 브라질의 승리를 축하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연경도 "오늘 경기는 크게 할 말이 없다"면서 "상대 선수들이 득점은 물론 수비도 너무 좋은 실력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대표팀도 브라질과 4강전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 4강을 포함해 7전 전승, 유일한 무패 팀입니다. 대표팀도 A조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맞붙었지만 0 대 3으로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라바리니 감독과 선수들은 열심히 준비했고, 신체적인 조건 등 불리한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기에 팬들도 패배에 대한 비판보다 격려를 훨씬 더 많이 해주는 겁니다.

김연경은 인터뷰 말미에 "(올림픽에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아 감사한 마음을 보이고 싶었지만 좋은 경기를 보이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비록 브라질에 당한 완패는 인정하지만 그래도 더 나은 모습을 보였여야 한다는 겁니다. 팀을 이끄는 자리라면 패배에 아쉬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안타까워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미국과 4강전 뒤 김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김혜성(키움), 이의리(KIA)는 "일본과 (결승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꼭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져서 아쉽다"고 했습니다. 선수들은 경기 후에도 투지를 보였는데 정작 이들을 이끄는 사령탑의 "아쉽지 않다"는 발언. 물론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해 선수들에 대한 비판을 막게 하려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노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아 정말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김연경이 6일 도쿄올림픽 브라질과 4강전을 마친 뒤 아쉬운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노컷뉴스


P.S-여자 배구와 야구 대표팀의 4강전 경기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인터뷰가 있습니다. 지난 4일 터키와 8강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의 말입니다. 양효진(현대건설)은 "신혼인데 남편을 본 지 너무 오래됐다"면서 "눈 뜨면 밥 먹고 미팅하고 훈련하고 경기하고 정말 살찔 틈이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준비와 출전에 올림픽 참가까지 근 4개월 동안 합숙하고 있는 상황. 김연경은 "그동안 외부 활동이 전혀 없었다"면서 "VNL을 마치고 와서도 자가 격리와 코호트 훈련을 했고, 그리고 올림픽에 왔는데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짐짓 한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연경이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선수들이 뭐가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겁니다. 그 중요한 것은 바로 올림픽 메달입니다. 한국 배구 역사에 단 한번뿐이었던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메달(동)의 역사를 재현하자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야구 대표팀은 올림픽 직전 국가대표 선수들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위반해 도쿄에 오지 못했습니다. 일반인 여성들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신 겁니다. 원정 숙소를 이탈해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까지 오기도 했습니다. 그 여성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오고, 일부 선수들도 감염되면서 KBO 리그가 사상 처음으로 중단되는 등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4개월 동안 남편도 만나지 못한 채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서 땀을 흘리는 여자 배구 대표팀. 세계 강호 12개 국가가 겨루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야구 대표팀은 허술한 선수들의 자세 속에 6개 팀이 출전해 3개의 메달을 겨루는 올림픽을 치르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방역 수칙을 위반한 전 국가대표들은 예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

어쩌면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 동메달을 딸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 여자 배구 대표팀은 만에 하나라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메달을 딴 팀과 걸지 못한 팀, 어느 팀에 국민들이 박수를 보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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