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울리는 공항서 2박"…아프간 대사의 긴급 탈출기

"탈레반이 20분 거리까지 왔다" 15일 서울 본부와 화상회의 중 긴급 전갈
긴급철수 지시에 문서 등 파기, 개인 짐만 챙긴 채 우방국 대사관 이동
교민 A씨 철수 설득하며 최태호 대사 등은 공항에서 사흘 대기
"아직 가족들과도 통화 못해"…군중 난입 돌발 상황도 목격하며 우여곡절

18일 기자들과 화상 인터뷰를 가진 최태호 주아프간대사. 외교부 제공
"양복을 미쳐 카불에서 가져오지 못했다. (탈출) 헬기를 타려면 아주 작은 가방만 허용됐기 때문에…"

 
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 대사는 18일 화상 인터뷰에서 간편복 차림을 한 이유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현지에서의 긴박했던 대피 상황을 설명했다.
 
최 대사는 수도 카불에 남아있던 교민 A씨와 다른 공관원 2명과 함께 지난 17일 아프간을 떠나 현재 중동의 카타르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 대사는 지난 25일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를 진행하던 중 오전 11시 30분쯤 공관 경비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차편으로 약 20분 거리까지 근접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국외 탈출 위해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담을 넘는 아프간인들. 연합뉴스
그 직후 우방국 대사관으로부터도 탈출과 소개 작전을 하라는 긴급 공지가 전해졌다. 최 대사는 평소 친분이 있는 다른 우방국 대사 3~4명에게 상황 확인 및 정보 공유차 전화를 했다. 이들 역시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반응이었고, 일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최 대사는 정의용 외교장관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했고 긴급 철수 지시가 내려졌다. 공관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주요 문서와 보안기기 등을 파기하고 간단한 개인 짐만 챙긴 채 우방국 대사관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최 대사는 주아프간 대사관이 위험 지역에 있는 특성상 언제든 퇴각할 준비가 갖춰졌기 때문에 철수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불 내 그린존(안전지대)에 위치한 각국 대사관은 매주 두 차례 회의를 통해 아프간 상황에 대한 정보를 교환해오기도 했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는 모습. 연합뉴스
공관원들은 이후 우방국이 제공한 헬기 편으로 카불공항으로 이동했고, 이날 오후 5시쯤 최 대사를 비롯한 3명을 제외하고 1차 출국 수속을 완료했다. 최 대사 등은 인근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교민 A씨의 출국을 권유하기 위해 다음 순서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와중에 공습경보가 내려져 1시간 정도 대피하는 돌발 상황도 있었다.
 
A씨는 당초에는 사업상 이유로 나중에 자력으로 철수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설득 끝에 다음날(16일)까지 사업장을 정리할 말미를 달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5일 저녁부터는 공항 내 민간공항 영역으로 아프간 군중이 난입했다. 또 이를 제지하기 위해 헬기가 상공을 선회하고 총성이 곳곳에서 울리는 긴박한 장면도 연출됐다. 
 
A씨는 16일 제3국인에게 사업장 인수인계를 마쳤고 출발이 가능해졌지만 이번엔 군중이 군공항 쪽으로도 밀려들었다. 최 대사는 이날 유럽 우방국들의 교민 소개작전과 관련한 대사들 간의 회의에 참석하며 추가적 상황 파악에 나섰다.
아프간 카불공항서 출발한 미 수송기에 꽉찬 사람들. 연합뉴스
통제 불능에 빠졌던 공항 사태는 17일 새벽 1시쯤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정리됐고, 최 대사 일행은 이날 오전 3시쯤 우방국 군용기 편으로 아프간을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2박을 하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뒤였다.
 
최 대사는 "너무나 바쁘기도 했고 유일한 교신 수단인 핸드폰 배터리가 닳을 것도 걱정됐다"면서 "아직 가족들과도 통화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