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이상한 소송…헌법 38조와 숨겨진 돈

SBS 제공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무일푼이 되었다며 추징금 및 세금은 피해 다니면서도 아직도 회장처럼 사는 63빌딩의 신화, 신동아 그룹 최순영 전(前) 회장에 대해 알아본다.
 

80대 남성에게 날아온 소송장

지난 4월, 서울 양재동에 사는 80대 남성 최씨에게 한 통의 소송장이 날아왔다. 고소인은 다름 아닌 최씨의 아내와 자식들이었는데 가격조차 알기 어려운 오래된 미술품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다퉈보자는 내용이었다. 이 가족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소송 한 달 전, 최씨의 집엔 서울시 공무원들이 방문했다.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은 지방세 고액 체납자였던 최씨의 집을 수색해 동산을 압류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미술품이 나왔다. 이날 서울시가 압류했던 미술품이 바로 소유권 확인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 세금 징수를 피하고자 체납자의 압류 물품에 대해 가족들이 소유권을 주장한 유례없는 소송.
 
"체납자가 응소하지 않으면 체납자 배우자의 승소 판결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에 저희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기 위해서 체납자 소유재산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주장을 하는 겁니다." (시청 관계자)

이런 이상한 소송의 주인공 최씨는 바로 오래전 신동아 그룹을 이끌었던 최순영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은 약 1천억 원대의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과 지자체가 매년 공개하는 고액 체납자 정보에서 20년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거대 재벌이었던 최 전 회장은 어떻게 이런 고액 체납자가 된 것일까?
 

그때 그 시절의 회장님, 최순영

80~90년대, 계열사 22개의 '신동아그룹'을 이끌던 기업인 최순영. 1976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30대의 젊은 나이로 그룹 소유주 자리에 올랐던 그는 수완을 발휘하며 신동아 그룹을 성장시켰다. 당시 45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던 대한 생명보험사를 이끌었고,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63빌딩까지 건설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신동아 그룹은 IMF 때도 어려운 적 없었어요. 밖엔 뭐라고 소문이 나지만 실제로 어려운 적이 별로 없었어요. 돈 때문에." (최 전 회장이 세운 사단법인 관계자)

그런데 1999년 2월, 최 전 회장은 갑작스럽게 검찰에 연행된다. 당시 검찰이 파악한 혐의는 '외화 밀반출'과 '횡령' 등이었다. 신망받던 그룹 총수의 비리는 세간에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결국, 최 전 회장은 범죄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 추징금 1500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신동아 그룹은 위기에 처했다. 계열사들에 부당지원을 해 부실해진 대한생명에는 막대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가 하면, 나머지 계열사들도 하나둘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으로 매각되면서 '신동아 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명단에서 사라진다.
 
사건 이후, 고액 체납자가 된 최 전 회장. 지난 20여 년간, 그는 무일푼이 되었다며 추징금은 물론 국세나 지방세 등의 세금을 자진 납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현재, 최 전 회장은 가족과 함께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에 살고 있고, 최고급 자가용도 이용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돈이 없어 세금을 내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사실인 걸까.
 

종교법인을 만든 회장님…그 진실은?

"참 돈 많은 것만 세상을 사는 게 아니로구나. 없으면서 편안하게 사는 법. 지금 그 노숙자들의 심리를 제가 알겠어요." (2015년 최 전 회장 간증 내용)
 
신앙 간증에 나서 자신을 노숙자처럼 살고 있다고 말한 최 전 회장. 하지만 겉보기엔 여전히 재벌 오너처럼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제작진은 취재 도중 최 전 회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제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최 전 회장이 과거 회삿돈을 이용해 종교법인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수입원이나, 남아있는 자산도 없는 최 회장 일가가 이렇게까지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법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전 회장의 부인이 최근까지 이 종교법인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법인소유 부동산만 해도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최 전 회장이 설립한 재단법인, 사단법인은 종교활동을 하는 단체들로 그 수입과 자금의 흐름이 명확히 공개되지 않는 상황. 과연 제보자의 말은 사실일까.
 
"교회를 앞잡이하고 뒤에서 다 자기가 원하는 ATM기를 만들어 놓은 거죠.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하지 않아요." (제보자 Y씨)

헌법 38조 vs 비양심 장기 체납자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 헌법 제 38조에 따라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반면, 여러 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 납부를 피해가고 있는 비양심 장기 체납자들.

최 전 회장 일가도 이번 미술품 소유권 소송에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체납한 세금은 납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4년부터 누적된 미징수 세금은 2021년 7월을 기준으로 35조 715억 원에 달한다. 게다가 2020년 신규 장기 고액 체납자(1년 이상·2억 원 이상 기준)들의 평균 체납액은 7억 2천만 원에 이르고 있다. 스스로 무일푼이라고 하며 회장처럼 살아가고 있는 비양심 체납자들. 이들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신동아 그룹 최순영 전 회장의 소송 사건을 통해 비양심 고액· 상습 체납자들의 실태를 추적한다. 비양심 체납자들과 끈질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 '38세금징수과'의 활약과 고민을 들여다보고, 대한민국 징수법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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