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레미니센스' 현대판 오르페우스가 구한 것과 잃은 것

외화 '레미니센스'(감독 리사 조이)

외화 '레미니센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에서 비록 에우리디케의 육신은 죽음에 머물렀지만,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볼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재해석한 '레미니센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옥 같은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연인의 영혼을 끌어올린다.
 
해수면 상승으로 도시 절반이 바다에 잠긴 가까운 미래, 사람들 머릿속을 엿보는 탐정 닉(휴 잭맨)은 고객들이 잃어버린 기억에 다가가게 도와주며 과거 속을 항해한다. 단조롭던 닉의 인생은 잃어버린 열쇠를 찾으려는 새로운 고객 메이(레베카 퍼거슨)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닉은 메이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지만, 어느 날 메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메이의 실종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동분서주하던 닉은 메이를 쫓을수록 자신이 몰랐던 메이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동시에 닉은 메이와 엮인 잔혹한 음모를 알게 되며 이를 밝혀내기까지 해야 한다.
 
외화 '레미니센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망각의 역현상'이란 뜻을 지닌 제목 '레미니센스'(Reminiscence)처럼 영화는 오래된 과거일수록 더욱 또렷이 기억나는 현상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해수면 상승과 이후 벌어진 전쟁으로 미래도, 희망도 잃은 사람들은 과거 기억에 매달린다. 이는 영화 속 중요한 복선이 된다.
 
참전 용사 출신의 닉 배니스터는 고객들의 기억과 생각을 다루며 그들이 과거 기억 속에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돕는 일종의 안전 요원이다. 그런 닉이 고객으로 찾아온 메이의 기억 속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 뒤, 그녀의 과거와 흔적을 쫓아가는 여정이 '레미니센스'의 중심 줄기다.
 
닉이 메이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현실과 과거 기억 사이를 오간다. 닉이 고객들의 과거 기억 속 항해를 도울 때마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메이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메이의 흔적들을 뒤쫓는다.
 
외화 '레미니센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안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만, 영화는 사랑하는 연인 메이의 과거와 지옥 같은 비밀스러운 현실을 쫓는 현대판 오르페우스라고 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는 독사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가고, 고생 끝에 에우리디케를 만나 지상으로 돌아오려 한다. 그러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잊고 뒤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게 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듯, '레미니센스' 속 닉과 메이 역시 놓친 손을 다시 붙잡지 못한다. 이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과 비슷하다.
 
다만 영화 속 오르페우스인 닉은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조금은 다른 방향을 간다. 과거 기억들을 뒤쫓아 결국 에우리디케인 다양한 사건과 소문들로 둘러싸인 메이의 진정한 모습과 메이가 얽힌 사건 뒤에 숨은 진실을 건져 올린다. 중요한 것은 메이가 겪고 있던 심리적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이다.
 
영화는 메이의 그림자를 보여주며 닉과 관객이 알고 있던 메이의 모습이 거짓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심는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 메이는 도덕성을 버린 존재로 나온다. 메이의 과거를 쫓아 닉이 만난 사람들 역시 닉은 '진짜 메이'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짜 메이를 알지 못했던 것은 오히려 메이의 단편적인 모습만 알고 있던 그들이다. 메이 역시 자신의 과오와 과거로 인해 괴로워했던 인물이고, 그런 자신의 어둠을 벗어나고자 한다.
 
외화 '레미니센스'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레미니센스'의 오르페우스 신화의 재해석이 의미 있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비록 오르페우스처럼 메이의 육신까지 저승에서 되찾아오지 못하지만, 어쩌면 메이에게 가장 간절했던 자신의 본래 모습 혹은 돌아가고 싶었던 모습을 닉이 지옥 같은 과거에서부터 끌어올려 준다. 여러 거짓과 후회로 둘러싸였던 메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닉을 통해서 메이는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옥 같은 삶과 과거에서부터 끌어올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찾고자 했던 정체성을 되찾아주는 것이 '레미니센스'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현대적인 오르페우스의 모습이다.
 
이 과정을 영화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기억을 재생하고 들여다본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현재의 현실과 기억 속 과거 세계를 오가는 형식으로 바꿨다. 분명 흥미로울 수 있지만, 어딘가에서 봐왔던 것들의 재현이라는 기시감과 익숙함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또한 오르페우스 신화를 중심 줄기로 하는 닉과 메이의 이야기 진행에 해수면 상승이라는 기후변화, 극심한 빈부격차, 경제 권력자들의 횡포와 이에 분노하는 시민들 등 현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려 한다. 그러나 많은 것을 녹여내려다 보니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잘 엮이기보다는 각각이 겉돌아 중심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만드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15분 상영, 8월 25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레미니센스'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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