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돼 처벌받은 조선인들이 한국 정부의 배상 해결 의지를 문제삼으며 제기한 헌법소원이 각하됐다.
헌법재판소는 31일 조선인 전범 생존자 모임 '동진회' 회원과 유족들이 "한국 정부가 자국 출신 전범 문제를 방치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각하)대 4(위헌)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14년 헌법소원을 제기한지 7년 만이다.
헌재는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다가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처벌받은 역사적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전범의 피해 보상 문제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갖는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청구권의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헀다.
그러면서 "설령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입은 피해에 한국과 일본 사이 분쟁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한국 정부가 그동안 외교적 경로를 통해 이들 전범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해결과 보상 등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이상 한국 정부가 자신의 의무를 불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동진회' 회원 등 조선인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강제 징용돼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면서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통제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들 조선인 148명은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국제전범재판에 넘겨져 B·C급 전범으로 분류돼 처벌받았다. 이후 출소한 조선인 B·C급 전범들은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해왔지만, 일본 법원에서 내리 패소했다.
헌재는 이날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일제 강점기 B·C급 전범들이 겪었던 불행한 역사적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 한다"며 "다만 이들이 받은 피해의 상당 부분이 국제전범재판의 처벌로 인해 생겼고, 이같은 국제전범재판의 국제법적 지위와 효력은 국내기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