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역선택 방지는 사라졌지만 일부는 "이 악물고 참는다"

국민의힘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 윤석열, 최재형 대선경선 후보 등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홍준표, 유승민,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역선택 방지조항 제외'를 주장하며 이날 행사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경선 룰의 가장 큰 화두였던 역선택 방지조항이 결국 도입되지 않기로 하며, 경선이 파행으로 치닫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1차 컷오프에 당원투표 20%를 도입하거나, 최종 후보 선출 여론조사에 '본선경쟁력' 측정 등 변경된 룰이 또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그룹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6일 각자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뉘앙스는 달랐다. 전날부터 역선택 방지조항 이슈에서 발을 뺐던 최 전 원장은 선관위 결정을 "환영"한다며 '원팀 경선'에 앞장서겠다고 했고, 역선택 방지 도입에 앞장섰던 윤 전 총장은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며 그간의 이견이 화합의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을 문제삼아 왔던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매우 짤막한 입장만 냈다. 홍 의원은 "또 다른 불씨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선관위원 전원의 합의는 존중하겠다"며 약간의 불만족을 드러냈고, 유 전 의원은 "본인은 오늘 선관위의 결정을 수용하겠다"고만 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윤창원 기자
표면적으로는 유력 주자들이 모두 경선룰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므로 당분간은 평화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홍원 선관위원장의 중립성을 의심하며 경선준비위가 정한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던 캠프들은 정 위원장이 기어이 경선룰을 변경했다며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특히, 1차 컷오프를 기존 여론조사 100%에서 여론조사 80%, 당원 투표 20%로 변경한 것은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에서 강세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압도적 승리'를 돕기 위한 장치라고 보고 있다.

12명의 예비후보를 8명으로 압축시키는 1차 컷오프는 선두그룹의 주자들에게 큰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컷오프에서 나타는 지지율은 국민들에게 선보이는 '개막전 점수'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승기를 잡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윤 전 총장의 경우 최근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는 추이를 보이며 홍 의원에게 추격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중간한 격차로 1위를 차지할 경우 판세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캠프는 2위 주자와 애매한 격차로 1위를 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예비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창원 기자
때문에 앞서도 윤석열 캠프에서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어 '가짜 지지자'를 걸러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던 것인데, 1차 컷오프에 당원투표가 포함됨으로써 윤 전 총장에게 우호적인 열성 지지자들을 통해 이런 우려를 어느정도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반대해왔던 후보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정 선관위원장의 중립성을 의심하며 "이를 악물고 참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유 전 의원측 관계자는 "100% 국민 여론조사보다 열성 지지자의 응답이 많아져 국민 여론과는 괴리될 텐데 왜 욱여 넣은 것인지 의문"이라며 "윤 전 총장이 1차 컷오프에서 크게 앞서게 하고, 나머지 경선 과정도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본선경쟁력'이라는 추상적인 문구는 말 그대로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홍 의원측 관계자는 "경쟁력 파악을 위해 조사 문항 등 결정할 것은 많고, 후보별 입장도 다 다를 것"이라며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여론조사 문항도 합의를 못 할 뻔 하지 않았느냐"고 우려했다.

실제로 당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여론조사 문항에 '경쟁력'과 '적합도' 중 어떤 단어를 사용할 지를 두고 오랜 공방을 벌였다. 예비후보 4명 중 1명을 추리는 최종 경선에서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문구를 찾기 위한 싸움은 필연적이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모든 경기는 룰이 정해지고 시작되는 것인데, 정치권은 게임하는 중에 룰이 자꾸 정해지는 것이 구시대 적폐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수혜를 입은 것으로 지목된 윤 전 총장 측도 불만이 없는 것이 아니다. 도입을 요구해왔던 역선택 방지조항이 불발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는 "우리도 역선택 방지 조항의 필요성을 주장해왔지만, 결국 불발된 것 아니냐"면서도 "후보간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확전을 피했다.

핵심적인 갈등은 일단락 됐지만, 이처럼 물밑에서는 노골적인 불만이 쏟아져 나오면서 향후 갈등의 밑거름이 되는 분위기다. 선관위에 대한 불신은 7일 후보자별 프레젠테이션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후보자들은 개인별로 7분의 발표시간을 갖고, 추첨을 통해 선정된 후보자 1명에게만 한 번의 질문을 할 수 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원하는 후보에게 질문할 수도 없는 제2의 학예회 행사인가"라며 "선관위가 토론에 자신이 없는 후보들을 보호하려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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