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법관 취업제한제 '있으면 뭐하나'···5년간 0건

대법원의 최근 5년간 퇴직자 취업심사 결과
소병철 의원 "취업심사제도 허점 이용…입법 취지 몰각"

소병철 의원. 소병철 의원실 제공
최근 5년간 퇴직한 법관들 중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재취업이 제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취업제한 제도가 퇴직 법관들에게는 유명무실한 '프리패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법사위)이 1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퇴직자 취업심사결과'에 따르면, 총 36건의 취업심사에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모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7건은 삼성SDI㈜, ㈜KT 등 대기업으로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유'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취업승인이 떨어졌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자체의 정무직 공무원, 법관 및 검사 등과 각 기관별 규칙에서 추가로 정한 공직자(취업심사 대상자)는 퇴직일로부터 3년간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취업심사대상기관)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취업심사대상자의 업무와 취업심사대상기관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거나 취업승인을 받은 때에는 예외적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상세한 기준은 각 기관별로 정한 규칙에 따른다.

대법원은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규칙'으로 법관 외에도 5급 공무원과 5급 상당의 임기제공무원을 취업심사대상자로 정하고 있다. 자본금이 10억 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 원 이상인 영리 목적의 사기업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로서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면 취업이 가능하다.

최근 화천대유자산관리 주식회사(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의 고문료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가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하지 않아 취업심사마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제도는 퇴직공직자와 업체간의 유착관계를 차단하고 퇴직 전 근무했던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소병철 의원은 "특히 법관의 경우는 법을 적용하고 심판하는 공직자로서 다른 공직자보다도 더 엄격한 법과 윤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취업심사제도의 허점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것은 입법의 취지를 몰각시키고 공직자로서의 권위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취업제한 관련 규정은 엉성한 그물처럼 이리저리 다 빠져나가게 돼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며 "대법원이 더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법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공직윤리를 바로 세우고 다른 공직사회의 모범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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