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EN:]봉준호와 하마구치 류스케를 만든 '불안'과 '모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봉준호 감독×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스페셜 대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
하마구치 류스케 "봉 감독님 밑에서 연기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봉준호 "선후배 떠나서 존경하는 감독…마음의 체험을 하게 해주는 귀한 감독"

7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하마구치 류스케×봉준호'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표 감독인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은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자의 '약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약점이라 말한 '불안'과 '모순'은 두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영화에 접근하는 그들만의 태도였다.
 
7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하마구치 류스케×봉준호'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표 감독인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이기도 한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드라이브 마이 카'와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우연과 상상'을 바탕으로 서로의 영화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7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하마구치 류스케×봉준호'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韓·日 대표 두 감독이 밝힌 '약점'이란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오는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마음 한구석에 꾹 눌러둔 어둠과 외로움을 간직한 주인공을 하마구치 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냈다. 또 다른 작품 '우연과 상상' 역시 우연이라는 계기를 비집고 드러나는 세상의 형상을 하마구치의 영화는 고유의 스타일로 그려낸다.
 
봉준호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속에서 보이는 차량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엄청난 대사와 침묵의 순간들, 그리고 차 안에서의 대화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는 대화 신과 대사가 정보 전달을 위해 애쓰려 하는 대사가 아니라 영화적으로 인물의 마음의 풍경 들여다본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점에서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에 관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내가 대화를 쓰는 것밖에 못 하는 타입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대본을 쓸 때도 대사를 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할 수 없다는 게 나의 특징이다. 그게 바로 나의 약점이라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으로 차 안에서의 대화라는 걸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점 A에서 지점 B로 차를 통해 옮겨가는 동안의 시간이라는 것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말랑말랑한 특이한 시간이라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끝날 시간인데, 그사이 이동하는 동안 말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향에 대해서 하마구치 감독은 "에릭 로메르 감독님은 굉장히 말을 많이 쓰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니 이렇게 재밌게 대사를 많이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로메르 감독이 쓰는 대사는 설명하기 위한 대사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인물, 연기하고 있는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포함해서 드러나게 하는 대사다. 그런 작업이라면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역시 봉준호 감독의 이른바 '약점'에 관해 궁금해했다. 봉 감독은 "나는 매 순간 불안하기에 여러 가지 회피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그걸 관객들이 좋다, 재밌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독창적이라고 하거나 해석해주기도 하는데 풍부한 해석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라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불안감의 표현이다. 내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는 확신의 감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불안감의 표현이다 보니, 그 자체가 약점이 아닐까 싶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 있어도 계속 의심한다. 그게 약점이자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불안'에 관해 하마구치 감독도 동의의 뜻을 밝히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막 해보는 거다.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애를 쓰거나 배우들과 리허설을 반복적으로 해나가는 등 그런 점에서 나도 불안 덩어리"라고 말했다.

7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하마구치 류스케×봉준호'에 참석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연합뉴스

캐스팅 방식, 배우에 대한 모순된 욕심 등 공통점 발견한 두 감독

 
봉 감독과 하마구치 감독은 연출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배우를 캐스팅하는 방식에서도 동질감을 드러냈다.
 
하마구치 감독은 오디션에서 연기를 보기보다 배우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가 자기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지 본다고 했다. 자기를 진짜로 내보이며 진심이 느껴지는 것이야말로 연기력보다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봉 감독 역시 연기 능력과 표현력을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야말로 캐스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두 감독은 영화와 연출, 캐스팅 방식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모순적인 존재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봉준호 감독은 "나 자신이 되게 모순된 어떤 걸 갖고 있는 거 같다. 배우가 내가 계획한 또는 내가 구상하고 상상한 뉘앙스를 아주 정확히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예상치 못한 걸 갑자기 보여줘서 나를 놀라게 해줬으면 하는 모순된 욕심이 있다"며 "총체적으로 돌이켜보면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역시 "나도 봉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모순된 욕망이 동시에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냥 남는 여분의 것들은 다 깎아내고 벗겨버리고 싶다는 욕망과 어떤 건 굉장히 생생하게 생기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담고 싶다는 게 대립적으로 내 안에 있다"고 말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시간가량 작품과 연출 철학 등과 관련해 진솔한 대화를 나눈 시간을 두고 하마구치 감독은 솔직한 감상을 전했고, 봉준호 감독도 진심을 담아 화답했다.
 
"이렇게 편안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은 속으로 제가 지금 봉준호 감독님의 연출을 받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기본적으로 감독님이 너에 대해 커다랗게 긍정해주면서도 한쪽으로는 '그래도 넌 아직 더 할 수 있어'라며 뭔가 끌어내 주는 느낌도 들었죠. 그래서 정말 이런 감독님 밑에서 내가 연기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_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요즘 일본 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드문 힘과 에너지와 집중력을 가진 감독입니다. 선후배를 떠나서 존경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보면 지구 밖 공간에서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이 중력을 받으며 흙을 밟기까지의 여정을 물리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데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인간의 내면, 마음에 도달하기까지 진짜 과정을 함부로 서둘러 축약하거나 편집해버리지 않고 우리가 몰랐던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기까지 과정을 체험하게 해줍니다. 그런 마음의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감독, 창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_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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