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또 '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 불신만 키웠다

정부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 폭등하고 가계대출 폭증
원인 놔두고 가계대출 옥죄자 무주택 실수요자만 피해
여론 들끓자 뒤늦게 '전세대출' 가계대출 총량서 제외
금융당국 수차례 정책방향 뒤집어 신뢰도 땅에 떨어져
대선 앞두고 또 다시 가계부채 대책 뒤집을까 우려돼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가계부채가 급증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동산) 가격이 오른 이유도 상당히 크다고 본다"


지난 15일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가계부채의 원인은 부동산 가격 폭등인데, (이 총재도) 위험선호, 차입에 의한 수익 추구 등을 말하며 국민을 탓한 것 아니냐"고 따지자 이주열 총재는 이렇게 답했다.

국민 대부분이 알고있는 상식(?)이지만 국정감사장에서 야당 의원의 강한 질책이 있어야 할만큼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서 가계부채 폭증의 원인을 직접 듣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이다.

그럼 가계부채 폭증의 원인이 된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은? 수요 억제에만 집착한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정부가 푼 과잉 유동성과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것 역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쉽게 '정부 정책 실패 → 부동산 가격 폭등 → 가계부채 폭증'이라는 도식이 그려진다.

그런데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보면 정부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원인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채, 그 결과인 가계부채 폭증을 억제해 역순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유도하고 정부정책 실패는 가리려는 것 아니냐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폭증을 이유로 제1, 제2 금융권 가릴 것 없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압박하고 나섰고, 결국 사상초유의 대출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의 아이콘으로 띄우고 있는 제3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조차 출범 열흘도 안돼 모든 대출을 전면 중단했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역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한 무주택자의 피해가 커졌다. "정부가 집값을 올려놔 매수도 힘든 상황에서 임대차3법 등으로 전세값까지 올려놓고 이제와서 대출을 중단하면 어쩌라는 거냐"는 성토가 나왔다.

현장에서 시장 상황을 조금만 살펴보면 전세자금대출까지 포함한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결국 전.월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를 몰랐다면 금융당국이 무능(無能)한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면 무정(無情)한 것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결국 여론이 들끓고, 정치권이 나서 압박하자 금융당국은 순식간에 정책을 뒤집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4일  "전세나 집단 대출이 중단되는 사례가 없도록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 전세 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 대출 잔액 증가율이 관리 목표(6%대)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며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제외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뒤늦게 실수요자 보호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애초부터 시장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주먹구구식의 정책을 남발하면서 정부 정책의 신뢰성은 다시 한번 땅에 떨어졌다. 지레 겁먹고 급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세를 옮긴 이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등 아무리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더라도 '버티면 된다'는 인식만 커지게 됐다.

사실 금융당국이 이런 오락가락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그 원인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청년층의 민심이반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금융당국은 발빠르게 청년층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말, 여당이 제시한 방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청년층에 대한 LTV 우대혜택 10% 추가 상향과 대상자 확대, 그리고 보금자리론 한도 확대와 40년 초장기모기지 도입 등의 당근책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9억원 이하 주택이 밀집한 서울 외곽지역에 청년층의 수요가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 재상승으로 이어졌다. 청년층의 '영끌'을 통한 추격매수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라던 정부가 오히려 대출 규제 완화를 통해 '빚내서 집사라'고 부추긴 꼴이 된 것.

미국의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중국 부동산 부문 부실과 경기악화 우려 등 대내외 악재가 줄줄이 대기상태인 현재, 금융당국이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퍼펙트 스톰'에 대비해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부채 관리가 절실한 상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금융당국은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또는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로 인해 수시로 정책 방향을 뒤집었고 그 결과 정반대의 정책 효과가 발생한 것은 물론 정책 신뢰도 크게 훼손됐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가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우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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