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회의 도중 별도 세션으로 14개국 정상을 소집해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를 진행했다. 중국은 빠지고 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과 독일·호주·캐나다 등 주요 동맹국이 회의에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들을 향해 "여러분 나라의 국가 안보를 위한 중요한 비축물자를 보강할 것을 촉구한다"며 "하지만 오늘날 많은 도전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인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조정이 필수"라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우리 공급망이 강제 노동과 아동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자의 존엄성과 목소리를 지원하고, 우리의 기후목표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지속가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는데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 정상을 불러 '세계의 굴뚝'인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은 채 국제사회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추가 자금 지원과 함께 국방 비축분을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공개했다.
실제로 G20 정상회의에 불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위적으로 소그룹을 만들거나 이념으로 선을 긋는 것은 간격을 만들고 장애를 늘릴 뿐이며 과학기술 혁신에 백해무익하다"고 말했다. 중국을 고립시키는 미국에 불쾌함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8일(현지시간) 마감되는 반도체 정보 제출 시한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재차 강조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부담감은 더 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정보 제출에 대한 압박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당초 우리 기업은 미국 정부에 사실상 영업 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최소한의 자료 제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달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업이 계약상의 비밀 유지 조항이나 국내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선에서 제공할 수 있는 자료를 검토해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SK하이닉스도 정보 제공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느 정도 수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 제출할 정보의 범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미 정부의 정보 제출 요구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차분히 잘 준비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170억달러(20조원)가 들어가는 미국 파운드리 제2공장 투자 계획 때문에 셈법이 더 복잡하다. 연방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타내려면 미국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는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하며 미국에서 반도체가 생산되도록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제정된 '미국 반도체법(CHIPS for America Act)'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제조 시설 등에 520억달러(약 61조1천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 6월 처리했다. 하원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만 연방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안의 최종 통과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