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겠다는데 안 불러주네요" 멀리 본다 박지수도, 수비 전술도

청주 KB스타즈 박지수와 몸싸움을 벌이는 아산 우리은행 김정은. WKBL 제공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의 간판 센터 박지수는 지난달 29일에 열린 인천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낯선 경험을 했다.

전반전 도중 허리가 아파 벤치에 앉아있던 박지수는 팀이 신한은행에 밀려 점수차가 벌어지자 김완수 감독에게 나가서 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감독과 가까운 위치의 벤치 앉아 교체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박지수는 "감독님께서 나를 코트에 투입하지 않았다. 분명 여기 앉아있는데 부르지 않았다. 설마 부르겠지 했는데 계속 안 불렀다"며 "저를 체력적으로 아껴주시는 모습에 후반에 힘을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박지수는 24득점 15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활약했고 KB스타즈는 접전 끝에 74대71로 이겼다. 박지수의 출전시간은 29분이었다. 양팀 선수 중 박지수보다 많이 뛴 선수는 다섯 명이었다.

박지수는 지난 4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시즌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과 라이벌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경기 내내 우리은행의 육탄 방어에 시달린 박지수는 3쿼터 종료 1분을 남기고 수비 코트로 돌아가면서 벤치에 교체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많이 지쳤다.

하지만 KB스타즈는 박지수를 벤치로 부르지 않았다. 그대로 남은 1분을 소화하게 했다. 한때 15점 차까지 벌어졌던 점수차를 좁혀나가던 우리은행의 기세를 감안할 때 쿼터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대신 박지수에게 4쿼터 초반 더 오랜 휴식시간을 부여했다. 박지수는 최대 승부처였음에도 마지막 쿼터 첫 3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쉴 수 있었다.

이때도 우리은행의 추격은 계속 됐지만 김완수 감독은 아직 몸 상태가 100%는 아닌 박지수의 회복을 우선으로 보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보통 이 같은 상황에서 초보 사령탑은 초조한 감정을 더 크게 느낀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박지수는 "전반 끝나고 허리가 다시 안 좋아졌다. 감독님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4쿼터 첫 3분을 쉬게 해준 게 너무 감사했다. 체력 관리를 해주시는 게 확실히 도움된다"고 말했다.

청주 KB스타즈 김완수 감독과 우리은행전 역전 결승득점의 주인공 김민정. WKBL 제공

수비 무너져도 끝까지…우리은행도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KB스타즈가 경기 시작부터 들고 나온 변칙 수비를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용할 줄 예상했는지 묻는 질문에 위성우 우리은행이 남긴 답변이다.

KB스타즈는 매치업 형태의 지역방어를 들고 나왔다.

이 수비의 핵심은 박지수의 위치다. 맨투맨(대인방어) 수비에서는 박지수가 외곽에 나가 2대2 수비를 해야 한다. 체력 소모가 크다. 게다가 박지수는 가급적 페인트존에 상주할 때 위력이 더 커지는 '림 프로텍터(rim protector)'다. 상대 슛을 견제하고 리바운드를 따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이 수비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복잡하다. 각자가 자신의 존을 지키면서 수시로 바뀌는 매치업을 신경써야 한다. 때로는 매치업을 따라 존을 벗어나는 상황도 벌어진다. 누군가 한순간 방심하면 전체 틀이 깨진다.

하지만 5명 모두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 빈틈이 없는 수비가 된다. 미국대학농구(NCAA) 템플 대학은 1990년대 이 같은 수비 형태로 유명했다. 그들을 상대했던 선수는 "수비수가 마치 5명이 아닌 8명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KB스타즈를 이를 바탕으로 전반 한때 점수차를 15점까지 벌렸다.

이 수비의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상대의 적응이다.

위성우 감독은 선수들이 전반까지 상대 수비에 대응을 못했다고 했다. 후반 들어 달라졌다. 위성우 감독은 검증된 명장이고 전주원 코치와 임영희 코치는 노련한 코칭스태프다. 게다가 박혜진은 리그 최정상급 플레이메이커다.

우리은행은 후반부터 상대 수비를 박살냈다. 위성우 감독은 "박지수가 안에만 있으니까 돌파로 붙었다가 밖으로 내주면 됐다. 박혜진이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스스로 극복했다. 수비를 한번 찢고 내주는 패스가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수비가 흔들리자 리바운드 포지션에서도 구멍이 발생했다. 박지수가 버티고 있었음에도 우리은행은 KB스타즈보다 1개 더 많은 공격리바운드 11개를 따냈다. 그 중 8개가 후반에 나왔다.

양팀의 경기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우리은행의 반격 이후 KB스타즈의 대응이었다.

그들은 수비를 바꾸지 않았다. 종종 변화도 있었지만 큰 틀을 계속 유지했다.

김완수 감독은 "(처음에는) 준비한 수비가 어느 정도 잘 통했다. 이후 우리은행이 잘 공략했다. 우리는 이 수비를 더 맞춰보자는 생각에 계속 썼다"고 말했다.

이어 수비 변경을 고민하지 않았냐는 거듭된 질문에 그는 "맨투맨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고, 준비한 수비를 다음에 또 써야 하니까, 결과를 떠나 좀 더 맞춰보면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무모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청주 KB스타즈. WKBL 제공


그 결과 KB스타즈는 4쿼터 역전을 허용했고 한때 6점 차까지 밀렸다. 하지만 반격에 성공했고 종료 4.1초 전 터진 김민정의 극적인 역전 레이업에 힘입어 71대70으로 승리했다.

만약 KB스타즈가 졌다면 끝까지 같은 수비로 일관한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책임이 돌아갔을 일이다. 하지만 이겼다.

오히려 값진 경험을 했다.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라이벌을 상대로 비시즌부터 준비한 수비를 원없이 시험해볼 수 있었다. 김완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김완수 감독은 경기 전 "위성우 감독님에게 한수 배우겠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위성우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 내가 공부해야 할 차례"라고 말한 뒤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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