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88세 이순재는 카랑카랑했다…'리어왕'

파크컴퍼니 제공
지난 5일 연극 '리어왕'이 공연 중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평일 낯시간인데도 공연장은 인산인해였다. 공연 전 로비에서부터 관객의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한 칸 띄어앉기로 인해 비워놓은 좌석을 빼곤 만석이었다. 3시간 20분 내내 몰입해서 관람하던 관객들은 커튼콜에서 배우들을 기립박수로 맞았다. 공연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리어왕'은 다음주까지 전회차 매진이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숭고하고 압도적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절대권력자에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의 뒤늦은 회한과 깨달음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권력을 둘러싼 탐욕, 배신, 위선, 복수 등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최고령 현역 연기자 이순재의 분투가 단연 빛을 발한다.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처럼 65년 연기내공을 이낌없이 쏟았다.

88세 노(老)배우는 3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극을 이끌었다.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나라를 호령하던 리어왕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로 쫓겨난 뒤 헝클어진 머리와 공허한 눈빛으로 내뱉는 독백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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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이 모진 폭풍을 어떻게 견뎠는가. 이런 일에 난 너무 소홀했다." 자신이 가엾은 처지에 놓인 뒤에야 리어왕은 군림하는 리더십이 잘못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가난한 이들의 고충을 함께 안고 가는 것이 통치자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이는 이번 공연에서 예술감독까지 겸한 이순재의 인생철학이기도 하다.

'리어왕'에는 26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관악극회 출신 베테랑 배우들과 소유진, 이연희, 서송희, 유태웅 등이 함께 무대를 누볐다. 리어왕의 첫째 딸 '고너릴' 역은 소유진과 지주연, 둘째 딸 '리건' 역은 오정연과 서송희가 연기했다.

이연희는 셋째 딸 '코딜리아'와 광대, 1인 2역을 맡았다. 연극 데뷔 무대임에도 '진실'을 상징하는 두 인물을 바삐 오가며 깔끔하게 소화했다. 관객 사이에서 '이연희 재발견'이라는 평이 적잖다. 이순재는 23회차 전 공연을 원캐스트로 책임진다.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충실히 반영한 점이 눈에 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 이현우 순천향대학교 교수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비유적 대사를 음미하며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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