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장동 그 이후…수도권 개발광풍, 이권다툼에 몸살

경기 광명·시흥지구 주민주도 환지개발 추진…"올 2월 돌연 신도시 지정"
노량진 7구역재정비 촉진구역…"시행사 해제 건 두고 갈등"
전문가들 "택지개발 촉진법 기반 신도시 개발은 원주민 보장 약해" "대규모 도시 개발은 공공이 해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의 모습. 이한형 기자
'민관(民官) 합동개발' 방식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제기된 '대장동 사태' 이후에도, 수도권 도시 개발 현장 곳곳에선 여전히 개발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공공택지 조성이 확실시된 광명·시흥 지구의 일부 주민들은 대장동을 반면교사 삼아 공영이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국토교통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 노량진7구역 재개발지역에선 조합장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져 사업 진행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일각에선 부동산 개발이 되면 천문학적인 수익이 발생하니 '민'이든 '관'이든 앞다퉈 개발 사업에 뛰어들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갈등과 각종 문제점 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대장동 사업처럼 특혜 논란이라는 '후폭풍'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광명·시흥지구 개발 주체 놓고 민간 vs 국토부


11일 찾은 경기도 광명·시흥 지구, 장절리 마을 입구엔 각종 물류창고와 공장들이 즐비했다. 마을 안길을 따라 주거지를 살펴보니 농지와 주택 사이에 각종 제조업체 공장이 눈에 띄었다. 일방통행 마을길엔 대형 물류 차량이 수시로 다녔다. 한 눈에 봐도 정비가 안 된 모습이었다.

정부는 지난 2월 이 마을을 포함, 광명·시흥지구를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발표했다. 문제는 2017년부터 주민들이 주민주도 환지방식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주민주도 환지개발 방식을 규정한 국토부가 법규와 약속을 뒤집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광명·시흥 지역 내 14개 취락 중 9개 취락에서 주민 과반 동의를 얻어 주민주도 환지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주민 동의서. 임민정 기자
광명·시흥 지구는 2006년 그린벨트가 해제된 후 2010년 5월엔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돼 150만호 공급계획과 같은 개발 기대가 일었지만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사업이 무산됐다.

2015년 4월 보금자리지구 해제 후 해당 지구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다만 국토부는 '환지방식'으로 취락정비가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소규모 구역을 지정해 도로 등을 정비하고 기존 땅 크기대로 토지를 재분배하는 방식을 허용한 셈이다.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후 주민들은 광명·시흥 지역 내 14개 취락 중 9개 취락에서 주민 과반 동의를 얻어 주민주도 환지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환지개발 사업은 속도가 붙는 듯 했지만 여러 난관에도 부딪혔다. 광명·시흥지구(광명·시흥특별관리지역) 광명총주민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윤승모 위원장은 "2018년엔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나서 주민들과 '광명·시흥 취락정비사업 민·공 협의체'를 구성했다"며 "하지만 이내 협의체 활동이 중단됐다"라고 밝혔다.

11일 찾은 경기도 광명·시흥 지구의 장절리 마을 입구. 정부는 올해 2월 24일 이 마을을 포함, 광명·시흥지구를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발표했다. 임민정 기자
주민들은 신도시 발표 전인 지난해 12월 도시개발전문가 그룹과 협업해 해당 지역의 개발계획이 담긴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같은 달엔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그러다 돌연 지난 2월 24일 정부에서 3기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발표되면서 환지개발 사업은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권익위는 신도시 발표를 2주가량 앞둔 지난 2월 8일 주민들의 주장이 합당하다며 '광명·시흥 특별관리지역 내 취락정비사업 적극 시행 요구' 건을 의결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민간주도의 환지개발을 추진하다 공영개발로 변경된 셈이다. 주민들은 "LH가 환지개발은 질질 끌다 공영개발을 진행하고 결국 땅을 다 뺏어 가겠다고 하니까 화가 난다"고 했다. 대장동 사태 이후 주민들은 "공영개발은 특정 개인에게 특혜를 몰아줄 수 있다. 공영개발로 포장된 특혜비리를 척결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긴 전단지를 만들어 지난달 15일 국토부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장동 사태의 여파로 공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광명총주민대책위 최재익 4구역 대책위원장은 "개발을 마냥 기다렸다가 피해 본 사람이 많다"며 "환지 개발도 LH가 주민 동의 50%를 받아오라고 해서 3개월 이상 주민들을 쫓아다니면서 받아냈는데 결과가 이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총주민대책위 강한균 5구역 대책위원장 역시 "결국에는 땅을 뺏어가겠다고 하니까 씁쓸하다"며 "수십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은 늙어 죽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돌연 정책방향을 바꿨다는 지적에 LH는 "광명 7개구역, 시흥 2개 구역에서 관계기관 협의 지연 등의 이유로 사업추진여부를 검토 중이었다"면서도 "해당 취락구역이 올해 2월 발표된 광명·시흥공공주택지구에 편입돼 무산됐다"고 해명했다.

국토부 역시 3기 신도시 발표 이후 주민 주도의 환지개발 방식 즉, 민간 개발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2015년 4월(보금자리지구 해제) 이후 주택 시장상황 개선에도 불구하고 특별관리지역 개발은 오랜 기간 동안 부진한 상황"이었으며 "시흥시 취락주민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정부 주도의 통합개발을 요구한 바도 있어, 이를 고려해 더욱 체계적인 기반시설 설치 등을 위해 공공주택지구로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민간개발도 '잡음'…노량진 7구역 '시행사 해제 건'으로 갈등

민간 개발도 순탄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으로 진행되는 민간주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경우 개발 호재에 사업성이 있다면 공공개발보다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재개발 현장에선 이해관계에 따른 다툼이 왕왕 발생한다. 그중 한 곳이 노량진 7구역재정비 촉진구역이다.  

2003년부터 개발이 진행된 해당 지역은 2017년 6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고 올해 7월 임대물량을 줄이고 분양물량을 늘리는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를 받았다. 겉으로 보기엔 순탄하게 재개발이 추진되는 듯하지만, 이면을 보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모양새다.

지난 4일 찾은 노량진 7구역의 '제30차 대의원회의'. 임민정 기자
지난 4일 찾은 노량진 7구역의 '제30차 대의원회의'. 회의장엔 고성이 오갔다. 당일 상정된 3가지 안건 중 '시공사 건설 계약 해지 및 해제 승인 건'이 문제였다. 대의원 회의에 참석한 한 주민은 "시공사 변경과 관련해 들은 바가 전혀 없다"며 "발의자를 데려오라"며 소리쳤다. 다른 조합원은 "주민 대표로 조합장이 됐으면 관련 내용을 잘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권한다"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합장측은 "조합원 92인의 발의 요청에 따라 안건을 올렸다"며 "시행사 해제에 관한 설명도 우편으로 통보를 했고, 정보공개도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공사를 바꿀 수 없다"며 개표를 저지했다.

일각에선 조합장의 비리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노량진 7구역의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를 위해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공문을 보낼 당시 돈 수천만원이 들었는데 금액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 조합장측은 "관련 업무를 수행할 업체를 선정할 때도 대의원 회의를 열어 주민 의견을 물었다. 관련 절차를 모두 지켜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노량진 7구역 조합원들은 지난 9일 조합장 해임안을 '노량7재정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발의자 총회에 올렸고 참석자 228명 중 219명의 찬성을 얻어 현재 조합장은 해임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각각의 민이든 관이든 각각의 개발방식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최황수 부동산학과 교수는 "택지 개발 촉진법 형태의 신도시 개발을 할 때 큰 문제점은 기존 원주민들에 대한 보장이 약하다는 측면이 있다"며 "동시에 기존 원주민들에게 보상 대우를 많이 해줄 경우 분양가가 올라가는 난점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광명·시흥지구는 특수한 경우로 보금자리 사업 진행이 무산되고 다시 신도시로 아파트가 지어지는 쪽으로 계획이 두 번이나 변경된 셈"이라며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반발할 것이고 정부 측에 농락당한 듯한 억울함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개발정책에 원칙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은 "조 단위 개발 이익이 남는 도시개발 사업은 공공이 하는 게 맞다"면서 "대장동처럼 민관 합동 개발로 할 경우엔 이익률 상한제를 정해 너무 과대한 이익이 민간에게 돌아가지 않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주민 입장에선 민간개발이 나을 수 있겠지만 공공개발을 하면서도 토지주들은 개발되는 주택을 특별 공급받게 해준다든지 이주 대책을 마련해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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