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성추행 범죄 또 은폐한 공군

성추행을 지속적으로 당한 여군 부사관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참모총장까지 물러나는 사태를 빚었던 공군에서 성추행 범죄를 또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다른 여 부사관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피해를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는데, 공군은 이를 스트레스로 인한 사고로 단순 처리했다.
 
사고 시기도 불과 열흘 간격이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공군 8전투비행단 소속의 부사관 A씨는 지난 5월 11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상관인 B준위에게 발견됐는데, A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다.
 
군 수사당국은 수사 초기부터 B준위의 성 추행 사실을 확인하고도, 6월초 단순 사고사로 처리했다. 가해 당사자인 B준위에 대해서는 7월에 가서야 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만 적용해 기소했다. B준위가 A부사관의 숙소에 방범창을 뜯고 침입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군은 B준위가 피해자의 집을 혼자 방문하거나, 먹을 것을 사주겠다며 숙소 근처로 찾아 간 것이 최소 7차례나 되는 것을 확인했고, 강제 추행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또한 피해자가 숨지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부대원이 B준위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B준위가 가해자의 집의 방범창까지 뜯고 침입한 이유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공군은 강제추행 등 성범죄 사실을 기소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유족들이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여러 차례 진정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다가, 8월에야 강제추행혐의로 입건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10월에야 추가 기소가 이뤄졌다.
 
사건이 발생하고 조사가 이뤄진 5월과 6월은 이 모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온 나라가 이 문제로 떠들썩하던 시기다. B준위에 대한 성 추행 사실이 또 불거지면 비난이 더 거세질 것을 우려한 의도적인 은폐 시도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유족들이 꾸준히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B준위에 대한 추가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공군의 은폐 시도는 상당히 악의적이다. 더구나 나이가 28살이나 많은 준위가 어린 하사를 성추행하고 그로 인해 목숨까지 끊게 만든 질 나쁜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도 기소하지 않은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사태가 계속 빚어지고 있는데도 군 당국의 처벌과 대응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참모총장이 옷을 벗고, 대통령까지 나서 엄벌할 것을 천명한 공군의 이 모 중사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는 온 국민에게 실망만 안겼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달 이 사건 관련자 25명 가운데 15명만 기소했다. 부실한 초동수사로 사건을 악화시킨 공군 20비행단 군사경찰과 군 검찰등 법무실 지휘부는 모두 배제됐고, 2차 가해 혐의로 추가 입건된 부대 상급자들 역시 처벌을 피했다.
 
이들의 불기소 이유는 모두 '증거 불충분'이었는데 애초의 부실수사로 증거인멸등 증거 부족을 불러온 것이 이들이 입건된 이유였다. 증거 부족을 초래한 혐의로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자신의 부실수사의 덕을 보는 아이러니한 수사결과가 아닐 수 없다.
 
군내 성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폐쇄적인 군의 특성 상 은폐되고 가려진 성범죄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져야 마지못해 수사가 이뤄지고 그나마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불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번 은폐 시도에 대한 엄정한 처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국방부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재발방지 방안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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