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지난 10월 12일 국회 국정검사 참석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이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대변인이다. 이 통화에서 박 의원은 여 차장에게 "국감 받느라 수고하셨다. 살이 빠진 것 같다. 건강 챙기라"면서 안부 인사를 묻는 등 극히 짧은 시간의 대화를 했다고 공수처는 전했다.
통화 말미에는 인사 차원에서 식사 약속 일정 제의를 완곡히 거절하다 날짜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사 관련 내용은 일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사적인 통화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적절한 접촉으로 보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여 차장이 박 의원과 통화하면서 22일쯤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가 뒤늦게 취소했다고 보도한 데 따른 입장문에서다.
이와 함께 공수처는 박 의원 뿐 아니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전화도 받았고, 고발사주 의혹 수사팀이 김웅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때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전화를 해 항의를 했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야당 의원의 전화까지 언급한 건 박 의원의 전화만 부각한 보도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특히 여 차장의 지위와 현실적 이유로 인해 여당 의원과의 전화 통화를 한 것이지, 부적절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여 차장은 실제 지난 16일 국회 법사위 예산소위에 참석해 2022년도 예산안에 대해 여야 의원에게 설명을 했고, 공수처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국회를 다시 찾아야 하는 등 기관 운영을 위해 국회 업무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차장이 수사를 지휘하면서 국회를 상대하는 업무도 맡는 구조 자체가 이같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예민한 시기에 야권 대선 후보의 수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게 중요한 지, 국회 업무를 하는 게 중요한 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수사를 맡기 전이야 대국회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수사를 맡은 후에도 꼭 해야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아무리 독립기구라고 해도 예산과 법안에 관련해 국회의 협조를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 종속될 수 밖에 없다"면서 "수사와 행정 업무를 따로 구분해야 함에도 병행하는 구조를 만들어 일을 키웠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공수처 뿐 아니라 모든 사법기관이 걱정해야하는 건 오비이락(烏飛梨落·우연히 동시에 일어난 일로 의심을 받게 된다)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조심해야 국민들이 신뢰한다"면서 "지금의 공수처는 이런 부분에 굉장히 취약해보인다"고 말했다.
당장 고발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의 변호인 측은 수사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손 검사 측은 "부적절한 수사 진행 과정 등과 관련해 주임검사인 여 차장을 수사에서 배제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을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구속 영장 청구 과정에서 여당과 교감 논란이 있었던 여 차장에게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부적절한 접촉을 한 것은 공수처 공무원 행동 강령 위반"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