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만삭아내 과실치사 후 엇갈린 보험금…왜?

보험금 부정취득 목적·고의적 사고는 '증거부족'
외국인 아내, 생명보험 중복가입 알았을까…의심
법원 "생명보험서 '동의' 판단 엄격히 해야"

스마트이미지 제공

▶ 2021.11.17.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 '만삭아내 과실치사' 보험금 선고
"망인(아내)이 A씨와 혼인 당시(2008년) 만 18세, 이 사건 제1보험계약 체결 당시 만 19세, 제2보험계약 체결 당시 만 21세로 사회경험이 많지 않았고 생활범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피보험자'나 '수익자' 등 보험계약서에 기재된 단어는 한자로 구성된 법률용어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으므로 단순히 한국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을 할 줄 아는 정도로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걸로 보입니다."
   
2014년 8월 23일 새벽 4시가 가까운 시각. 임신 7개월 만삭 아내를 조수석에 태운 채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갓길에 서있던 화물차와 충돌했습니다. 조수석이 화물차 왼쪽 뒤편에 부딪히면서 아내는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 A씨는 큰 부상 없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안타까운 사고가 살인 범죄로 의심받게 된 건 캄보디아인인 아내가 가입한 보험이 무려 33건, 사망 시 보험금은 총 95억원이 넘는다는 점이 드러나면서부터입니다. A씨는 살인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선 무죄를, 2심에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으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을 거쳐 살인혐의는 탈락되고, 졸음운전으로 인한 과실치사만 인정돼 올해 3월 금고 2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진실찾기는 아직 현재 진행중입니다. A씨가 막대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 최근 정반대의 민사재판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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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박석근 부장판사)는 A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약 32억원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전액을 인정했습니다. (보험사가 A씨에게 2억208만원, 딸에게 60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정기금으로 사고 당일부터 2055년 6월까지 A씨에게 매월 360만원, 딸에게 24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6~12%대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금액은 더 커집니다.)
   
반면 지난 17일 같은 법원의 민사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미래에셋생명을 상대로 한 A씨의 30억여원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사실상 쌍둥이 같은 사건에서 두 재판부는 공통적으로 3가지 쟁점을 꼽았습니다. ①보험금 부정취득을 목적으로 수많은 보험에 가입한 것인지 ②고의로 사고를 낸 것인지 ③아내가 보험계약의 의미를 이해하고 동의했는지 여부입니다.
   
우선 ②는 수년간의 형사재판 끝에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사고인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형사재판의 결과를 참고한 민사재판에서도 이같은 판단을 받아들였죠.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가 시속 60~70㎞로 주행하다가 우연히 정차된 대형 화물차량을 발견하고 화물차 뒷부분에 조수석 쪽만 충돌하도록 정확히 사고를 내는 게 가능한지. A씨와 아내는 2008년 결혼해 딸을 낳았고, 2014년 사고 당시까지 7년간 관계를 유지 중이었는데 곧 출산을 앞둔 아내를 살해할 동기가 있는지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고의적인 사고'임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했던 것이죠.
   
①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는 A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A씨가 아내를 피보험자로 체결한 보험만 33건에 총 보험금만 95억원이 넘지만, 단기간이 아니라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꾸준히 지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가입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순수 사망보장 보험 뿐 아니라 질병치료 등 다른 보험사고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도 있었고요.
   
특히 A씨는 1999년부터 본인 앞으로도 (중도해지 포함) 55건의 보험을 드는가 하면 자녀 앞으로도 10여건의 보험을 가입했습니다. 보험을 통해 약관대출이나 중도인출 등을 받으며 예·적금처럼 활용했다는 것이죠. 이에 과도한 보험가입 역시 의심은 키웠지만 결정적 증거로는 쓰이지 못했습니다.
   
연합뉴스
두 재판부의 판단은 ③에서 갈렸습니다. 아내 앞으로 든 보험청약서에는 아내의 자필 서명이 모두 기재돼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인인 아내가 실제 계약내용을 알고 동의한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는데요. 민사37부는 당시 보험모집인들의 증언에 따라 아내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던 점, 2012년에는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취득했고 2013년엔 귀화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점 등을 인정했습니다. 충분히 알고 한 계약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반면 민사36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액수가 가장 큰 생명보험들의 계약체결 시기에 주목했습니다. 모두 아내가 2008년 한국에 들어온 후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진 계약들이라 보험의 내용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 2021.11.17.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 '만삭아내 과실치사' 보험금 선고
"산부인과 의사는 2011년 9월 망인(아내)의 임신중절 수술 당시 상황에 관해 '망인과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말이 잘 안 통해 망인에게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A씨에게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작성된 병록일지에도 망인의 동의가 없었는데, 이 무렵까지도 중요한 결정을 함에 있어 상대방과 한국어로 의견을 나누어 명백한 의사를 밝힐 정도의 소통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보험설계사들은 경찰 조사에서 '망인은 사실 한국말도 잘 못하니까, 남편이 옆에서 설명을 듣고 싸인하라고 하니 그대로 따라서 싸인을 했었고, 제가 설명은 해줬지만 제대로 이해는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아내 앞으로 된 보험의 절반 이상이 2008~2011년 사이 체결됐습니다. 이 당시 체결된 보험만으로도 아내가 사망할 경우 A씨에게 지급될 보험금이 20억원이 넘었습니다.
   
연합뉴스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을 제한 없이 허용하면 보험계약자나 수익자 등 이해관계인들이 보험금 취득을 목적으로 피보험자의 생명을 고의로 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해당 피보험자의 '동의' 여부를 매우 엄격히 봐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의 경우, 그 계약 체결에 대해 이의가 없다는 의시를 표시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이루어진 동의여야만 한다는 것이죠.
 
▶ 2021.11.17.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 '만삭아내 과실치사' 보험금 선고
"만약 망인(아내)이 위와 같이 A씨가 자신의 사망으로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계약을 중복 체결하고 그 때문에 매월 상당한 금액(400여만원)의 보험료를 납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의문을 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생명은 거액의 보험금 소송에서 일단 승소했지만 재판부는 보험사의 책임도 함께 지적했습니다.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고 언제라도 도박보험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망인(아내)과 같은 사람을 피보험자로 하는 거액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할 때는 보험사가 그들의 모국어로 된 약관을 제시하거나 통역을 거쳐 진정한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요.

엇갈린 1심 판결들은 서울고법에서 열릴 2심에서 다시 한 번 맞붙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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