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심재명 대표는 왜 '애니메이션'을 꿈꿀까

영화 '태일이'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 <하>
명필름이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

영화 '태일이'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 명필름 제공
2011년 장편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을 흥행시키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명필름이 10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놨다. 노동운동 역사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업 '태일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청년 전태일의 삶을 다룬 '태일이'는 사회적 메시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던 영화들을 선보인 명필름다운 선택이다. 애니메이션, 그것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녹록지 않은 국내 영화산업의 현실에서, 다시금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명필름의 어떤 뚝심이 발휘됐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태일이' 개봉을 앞두고 명필름 심재명 대표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리고 심 대표에게 물었다. 왜 명필름은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을 꾸는지 말이다.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심 대표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매직'을 아는 진짜 마니아였다.

영화 '태일이' 스틸컷. 명필름 제공
​​▷ '태일이'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심재명 대표(이하 심재명):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워낙 많지 않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함께 할 인력을 만나는 것도 되게 어려웠다. '태일이' 제작에 31억 5000만원 정도 들었는데 제작자로서 제작비 마련도 어려웠다. 대기업 투자도 받지 못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2017년에 SBA 서울산업진흥원으로부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아서 출발,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영화 장편제작지원사업 등이 마중물이 되어 제작에 돌입했다.
 
또 알다시피 노동자단체, 시민, 다음 카카오 후원자들 등 수만명의 노력이 십시일반 모여서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지만 장편 애니를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성공시키는 건 더더욱 어렵구나 생각했다. 실사영화 여러 편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제작과정도, 애니메이션 인력을 모으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다.

 
▷ 명필름이 두 번째 애니메이션을,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뭐라고 했나?
 
심재명: 되게 의아해 했다. 명필름다운 선택이라는 응원의 말도 해주셨지만, '그게 과연 제작될 수 있을까?'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반응도 있었다. 시사회 후에는 막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태일이'를 통해서 전태일 열사에 관해 자세히 알게 됐다고, 딱딱하고 어렵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쉽게 이야기해줘서 좋다는 이야기도 해주셔서 용기를 얻고 있다.

영화 '태일이' 스틸컷. 명필름 제공
​​​​▷ '태일이'는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명필름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매우 오랜만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이자, 명필름이 잘하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동안에도 꾸준히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계획이 있었던 건가?
 
심재명: 한참 전부터 또 다른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번에는 동물원을 탈출한 곰의 이야기다. 사육사를 자기 엄마라 착각한 곰이 엄마를 찾아 동물원을 탈출하면서 대장정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결국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선택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제작비 규모도 클 것 같아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세 번째 애니메이션으로 준비 중이다.
 
▷ 10년 만에 '태일이'를 선보이는 만큼, 다시 한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나?
 
심재명: 애니메이션을 되게 좋아한다. 예를 들어 '주토피아'를 극장에서 5번을 봤고, '토이스토리 3'는 TV나 DVD까지 하면 10번은 봤다. 디테일이 섬세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한 번 보면 놓치는 게 많아서 보고 또 보는 식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손잡고 영화관에 가서 보는 게 애니메이션인데, 일본이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밖에 없더라. 제작자지만 엄마로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다면 굉장히 좋겠다고 생각했다.
 
▷ 질문을 이어가자면, 왜 명필름에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는 건지 궁금하다.
 
심재명: 가족 영화에 관심도 많았고, 가장 가족 영화스러운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고생했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으로 용기를 얻어 계속 만들자고 생각했다. 영화 제작자이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다.
 

'마당을 나온 암탉' 개봉 때 엄마들은, 아이들이 보여 달라고 해서 본 게 아니라 엄마들이 직접 티켓을 끊어서 함께 본 거라고 말했다. 보통 엄마들은 밖에 있고 아이들만 보러 가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같이 보고 같이 울면서 소통했다고 해서 감동받았다. 이게 애니메이션의 매력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세 번째, 네 번째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싶다.

명필름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스틸컷. 명필름 제공
​​▷ 사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그것도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건 애니메이션 제작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나 책임 같은 게 있는 걸까?
 
심재명: 애니메이션은 목소리만 그 나라의 언어로 바꾸면 정말 글로벌한 매체가 된다. 스페인에서도 독일에서도 짱구를 본다. 정말 모든 세계에 통용되는 영상 언어라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꿈꾸는 마법적인 순간을 구현할 수 있다. 실사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 관객들에게 마법적인 순간을 제공하는 게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다.
 
실사 영화는 규모도 크고 많은 사람이 잘 만드는데,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은 열악하다. 세계적으로 중국 일본 미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의 위치는 왜소하다. 한국이 영화 강국답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발견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가?
 
심재명: 지금은 워낙 게임 시장이 크니까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가 그쪽으로 다 가는 거 같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재능 있고 가능성이 있는 애니메이션 전공자나 애니메이터가 많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극과 용기를 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성공 사례가 '마당을 나온 암탉' 말고도 계속 나왔으면 한다. 그리고 공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태일이'를 볼 예비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심재명: 어떤 분이 아들과 함께 '태일이' 시사회에 오셨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을 10번이나 봤다고 하더라. 그때 어린 아들이 이제 청소년이 되어서 엄마랑 '태일이'를 본 후 너무 좋았다면서, 집에 돌아가서 전태일 평전을 집었다고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키즈'가 청소년이 되어 '태일이'를 보고 칭찬하는 순간을 보니 제작자로서 굉장히 감동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봤던 가족 관객들이 '태일이'를 보면서 또 좋아해 준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은 없을 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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