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배구 쿠데타는 실패로' 기업은행 차기, 용장이냐 덕장이냐

2일 오후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도드람 2021-2022 V리그 IBK기업은행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김사니 감독 대행이 코트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배구를 뒤흔들었던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쿠데타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항명을 일으켜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의 원인이 됐던 코치는 사퇴했고, 선수는 돌아올 길이 요원해졌다.

기업은행 김사니 감독 대행은 2일 오후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릴 '도드람 2021-2022 V-리그' 한국도로공사와 원정을 앞두고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서남원 전 감독의 경질 뒤 임시 지휘봉을 잡고 3경기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김 대행은 이날 경기 전 "구단이나 선수들에게 얘기하지 않고 독단적인 생각"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차후 구단이 복귀를 설득한다면 돌아올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뇨, 아뇨, 아뇨. 이번에는 제가 안 하겠습니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21일 서 전 감독을 팀 내 불화, 성적 부진 등 최근 사태의 책임을 묻는다면서 단장과 함께 경질했다. 주장이자 주전 세터 조송화와 김사니 당시 코치의 무단 이탈로 엉망이 된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후 기업은행의 조치는 논란을 더 키웠다. 서 전 감독의 훈련 방법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탈했던 김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승격해 팀을 맡긴 것. 감독, 단장 경질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김 코치를 설득해 지휘봉을 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서 전 감독이 떠나자 조송화도 슬그머니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일각에서는 김 코치와 고참급 선수들이 구단 최고위층과 선이 닿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지난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리고도 팀을 떠난 김우재 전 감독까지 소환돼 팀 운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 코치는 감독 대행을 맡은 뒤 첫 경기였던 지난 23일 흥국생명과 원정에서 "서 전 감독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모욕을 들었다"고 했다. 김수지, 표승주 등 선수들도 "그런 상황이 있었고 어렵고 힘들었던 자리였다"고 동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서 전 감독이 "폭언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 밝히라"고 부인하면서 진실 공방 사태로 번졌다.

지난달 23일 흥국생명과 경기 뒤 인터뷰에서 나선 IBK기업은행 김수지(왼쪽부터), 김희진, 표승주. 노컷뉴스

다만 다른 6개 구단 감독들이 일제히 김 대행의 기업은행을 인정하지 않는 등 여론은 미얀마 군 정부에게 하듯 '쿠데타 세력'에 절대 불리하게 돌아갔다. 차상현 GS칼텍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경기 전 김 대행과 악수를 거부했다. 다른 4개 팀 감독들도 그렇게 할 뜻을 드러냈다. 결국 김 대행은 이날 눈물로 사퇴를 고할 수밖에 없었다.

조송화 역시 팀에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업은행은 한국배구연맹(KOVO)에 조송화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요청했다. 당초 조송화에 대한 임의 해지를 요청했지만 선수가 동의하지 않아 차선책으로 상벌위를 선택한 것. 조송화고 "소명 준비 시간을 달라"며 연기를 요청해 당초 2일 예정이던 상벌위가 10일 열리지만 결국 구단은 조송화와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쿠데타 주역 2명이 축출된 만큼 빠르게 구단 분위기를 수습할 새 선장이 중요하다. 물론 잔존 세력이 있지만 여론의 몽둥이를 호되게 맞았던 만큼 다시 세력을 규합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 해도 혹시 모를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상황.

이미 구단은 서 전 감독 경질 뒤 차기 사령탑을 물색 중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당장 지휘봉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지도자들을 추리고 있다"면서 "워낙 복잡한 팀 상황이라 차기 감독 선임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새 감독이 정해질 때까지 김 코치에게 대행을 맡겼다.

하지만 김 코치마저 팀을 떠나면서 차기 사령탑 선임도 급해졌다. 조완기 수석 코치가 이미 가족의 병 간호 때문에 물러나 팀에 지도자는 신승환, 공태현 코치만 남아 있다. 기업은행은 당장 오는 5일 신생팀 페퍼저축은행과 홈 경기를 치러야 한다.

구단주인 윤종원 은행장은 해외 출장을 마치고 지난달 말 귀국한 상황. KOVO 관계자는 "백신 접종자로 하루 격리를 마치고 지난 1일 오후 출근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구단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물론 차기 사령탑 후보군에 대한 보고를 행장님에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단숨에 장악할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감독이 적임자일 수 있다. 반대로 마음 고생이 심한 선수들을 다독일 수 있는 부드러운 덕장도 선택지가 될 만하다. 과연 쿠데타 사태로 엉망이 된 기업은행을 다시 일으킬 새 사령탑은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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