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장 나쁜 검사'가 돼가는 공수처

정치검사, 부패검사보다 나쁜 무능검사
구속 0명 기소 0명, 존립기반 무너진 공수처
공수처는 수사능력을 시험하는 곳 아닌 입증하는 곳
소년병에게 탱크와 미사일 맡긴 격
무능한 검사를 위한 나라는 없다

공수처 출범 300일째였던 지난달 16일 오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한 모습. 연합뉴스
요즘 공수처를 보면 1990년대 검찰 출입기자 시절에 들은 얘기가 자주 떠오른다.
 
당시 특수부 검사로 이름난 모 검사장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검사가 누구일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출세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서는 등 인사 때마다 연줄을 들이대는 검사도 나쁜 놈이고 술과 접대를 좋아하는 부패한 검사도 나쁜 놈이지만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일 못하는 "무능한 검사"가 가장 나쁜 놈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고위 공직자 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기소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출범 11개월이 지난 지금, 그 성적표는 초라하다. 수사기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혜 채용 의혹을 1호로 시작해 지금까지 11건을 수사했지만 구속자는 한 명도 없고 기소자도 단 한 명 없다.
 
최근에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를 상대로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1차 청구 때 고발장 작성과 전달 주체를 특정하지 못해 기각당했는데 두 번째 영장에서도 특정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효력 취소 결정까지 받았다.
 
여운국 차장검사는 "저나 공수처장은 수사 경력이 없다. 이런 면에서 아마추어"라고 토로했다.
 
여운국 차장 검사. 윤창원 기자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상대로 수사 능력을 테스트하거나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 수사 능력을 입증하는 곳이다.
 
사건 제보자가 "자신 없으면 수사를 중단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면 공수처는 수사기관으로서 신뢰를 잃은 것이다.
 
공수처 간부가 스스로 '아마추어' 운운하는 토로에 동정해줄 국민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아마추어를 자처하면서 대적 상대는 프로 선수들만 고르고 있다는 것이다.
11건의 수사가 대체로 정치권과 연계된 사건들이다. 특히, 야권 유력 대선후보에게 집중돼 있다.
 
수사역량이 안되는데 프로선수들인 정치인 수사에 무리하게 뛰어들다 보니 '권력의 하청 수사기관'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과거 정치검찰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공수처는 판사사찰 의혹을 수사하겠다며 6일 손준성 검사에게 또 다시 소환을 통보했다.
손준성 검사(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이한형 기자
 
고발 사주 사건에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입은 내상을 판사사찰 수사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판사사찰 의혹은 이미 지난 2월 서울고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다.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무능 공수처'라고 완전히 주홍글씨가 붙을 것이다.
 
공수처의 앞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먼저, 공수처의 수사 역량이 계속 실망스럽다면 차기 정권에서 존폐를 논의해야 한다.
 
공수처의 다른 길은 스스로 수사 역량을 키울 때까지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거나 수사 대상을 조절하는 것이다.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소년병에게 탱크와 미사일을 맡길 수 없다.
 
정치검사, 부패검사보다 나쁜 검사가 무능한 검사다.
 
수사 능력이 없고 수사에 정당성이 없으며 인권 친화적이지도 않고 정치적 공방의 소재만 제공하는 공수처야말로 '가장 나쁜 검사'다.
 
지구상에 나쁜 검사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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