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간판 심석희(서울시청)가 동료 최민정(성남시청)에 대해 고의 충돌을 했다는 의혹에 대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 마디로 고의성은 다분하나 승부 조작에 대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조사위원회는 8일 서울 송파구 벨로드롬 연맹 회의실에서 2차 조사단 회의를 열고 결과를 발표했다. 양부남 연맹 부회장 겸 조사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문자 메시지 욕설 및 팀 동료 비하는 사실로 확인됐다"면서도 "그러나 고의 충돌 및 불법 도청, 승부 조작 등은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심석희는 2018년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대표팀 후배 최민정(성남시청)을 고의로 넘어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심석희가 당시 국가대표 A 코치와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 담긴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 측의 '변호인 의견서'가 지난 10월 모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다.
심석희는 A 코치와 최민정을 경기에서 고의로 넘어뜨리겠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대화를 나눴다. 특히 심석희와 A 코치는 최민정에 대해 여자 브래드 버리를 만들겠다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브래드 버리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당시 김동성, 안톤 오노(미국) 등이 엉켜 넘어진 사이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또한 최민정은 물론 김아랑(고양시청) 등 동료들에 대한 욕설이 담긴 메시지도 있다.
이후 심석희는 입장문을 내고 욕설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올림픽 결승에서 일부러 넘어진다거나 이 과정에서 다른 선수를 넘어뜨려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고의 충돌 의혹을 부인했다. 이에 최민정은 "심석희와 A코치 사이에서 오간 대화와 똑같은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고, 서로 칭찬하고 기뻐하는 대화가 이어졌다"면서 "이는 심석희와 A코치가 의도적으로 최민정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선수가 푸싱으로 넘어진 것은 의심이 간다"면서도 "그러나 자기 보호 차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브래드 버리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가 오른쪽 발로 다른 선수의 발을 밀면서 팔로 스냅을 치는 동작이 있는데 알고 한 행동"이라면서도 "무엇을 실현할 고의였느냐, 브래드 버리냐 나한테 오니까 친 것이냐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양 위원장은 "불법 도청도 실제 녹음 증거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2016 월드컵과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승부 조작도 선수들 진술과 영상 분석, 전문가 의견 등을 토대로 인정하기 어렵고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조사위는 또 "기타 건의 사항으로 비리 신고 센터를 설치하고 기존 연맹 기구 강화, 성 인지 감수성 및 인권 교육 강화 등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연맹은 조사위 결과를 토대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심석희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연맹 관계자는 "이달 안으로 공정위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심석희는 이번 논란 속에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 1~4차 대회 출전이 보류된 상황이다.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