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근본적 한계… 과태료 '무용지물', 잠정조치 '시간공백'

스토킹 범죄 피해자 둘러싼 강력 범죄 잇따라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에 '과태료' 부과… "가벼운 처분"
잠정조치, 경찰 신청·검찰 청구·법원 승인까지 일주일 소요

스토킹으로 인해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둘러싼 강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피해자 '신변보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마트워치 보급 등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만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등의 '가해자 제재' 시스템이 허술해 참극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에서 스토킹 피해를 받아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피의자 김병찬(35)에 의해 살해됐다. 또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지난 10일, 피의자 이석준(25)이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송파구 소재 집을 찾아가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흉기로 찔러 어머니를 살해하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리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스토킹처벌법 상 피해자 '신변보호'의 실효성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스토킹 행위가 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고 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한 경우 가해 의심자에게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긴급응급조치는 경찰이 추가 스토킹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경우 직권으로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또 스토킹 범죄의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법원은 경찰의 신청에 따라 △서면 경고(잠정조치 1호) △피해자·주거지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잠정조치 2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잠정조치 3호) △유치장 또는 구치소 구금(잠정조치 4호)을 결정할 수 있다.

긴급응급조치 어겨도 과태료…전문가 "가해자 제재로는 역부족"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병찬. 이한형 기자
문제는 긴급응급조치의 경우 가해자가 이 같은 조치를 불이행했을 때 과태료 부과 처분에 그쳐 가해자를 제재하기 역부족이란 점이다. 전문가들은 "과태료는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막기엔 가벼운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병찬은 경찰로부터 접근금지 등의 잠정조치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도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거나 범행 당일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는 등 조치를 무시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스토킹 범죄의 특성 자체가 반복성이기 때문에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어겼을 때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며 "벌금형이 아니라 구속이나 형사 처벌 등의 방법을 통해 본인이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로부터 처음 당하는 범죄가 아닐 확률이 높고 연인, 부부관계 때부터 괴롭힘 당하다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워 관계를 끊으려할 때 범죄 행위가 시작되는 특징이 있다"며 "그럼에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첫 위반부터 강력히 처벌하도록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창룡 경찰청장. 국회사진취재단
김창룡 경찰청장 또한 지난 13일 이 같은 참극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데 대해 재차 사과하면서도 "법률적 허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긴급응급조치에 불응하면 과태료 처분밖에 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응하더라도 경찰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현행범 체포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잠정조치 4호를 보면 위험성이나 범죄혐의가 어느정도 구성이 돼야 임시수용 등 강제 조치를 좀 할 수 있는 한계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영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현황'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지난 10월 21일부터 말일까지 잠정조치가 총 73건 승인됐는데 그 중 가해자의 신병을 구금하는 잠정조치 4호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잠정조치 승인 일주일 걸리기도…스토킹 범죄 특성 잘 아는 전담팀 있어야

또 잠정조치의 경우 경찰이 신청한 뒤 검사의 청구, 법원의 승인까지 받아야 해 길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돼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김 청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경찰이) 검사를 통해 (잠정조치 등) 신청을 하면 검사가 판사에 청구를 해 어떤 경우에는 일주일이 걸린다"며 "결정 전까지 접근을 하더라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에 위험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 신변보호를 빨리 해달라고 하면 정말 절박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며 "사법기관에서 굉장히 느긋하게 대응하는걸로 보이고 스토킹 범죄 비 전문가들이 전담한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에 스토킹 범죄 전담팀을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해당 범죄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훈련된 전담 재판부가 신속하게 잠정조치를 처리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경찰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 경찰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수도권 경찰서에서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A 경관은 "신변보호자가 요청하면 거주지 인근 등 순찰을 강화 조치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력의 한계를 봤을때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 "현장 대응 강화 필요", "처벌 강화가 해법은 아냐"

황진환 기자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에 대해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도 "현장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상황이) 법적으로 체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는데 나였어도 적극적으로 체포하거나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며 "현장에서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권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시민단체에서 과도한 공권력 행사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와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고 덧붙였다.

반면 A 경관은 "이번 신변보호자 피해 사건은 좀 과격한 상황이긴 하다"며 "하지만 신변보호 관련 사건은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있어서 관련 처벌 조항만 강화하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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