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끝까지 억울한 JTBC '설강화' 강행할 자격있나

두 번의 기회 있었지만 민주화운동사 왜곡 우려 해결 못해
"간첩이 민주화운동 주도 안한다" 해명만 앵무새처럼
1980년대 다룬 콘텐츠들 국가폭력 피해자들 존중 지켜와
'설강화' 속 민주화운동 시대 배경은 로맨스 '극적 장치'

JTBC '설강화' 배우 정해인, 블랙핑크 지수, 조현탁 PD. JTBC 제공
이미 되돌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는 끝났다. 과연 JTBC에게 세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snowdrop'(이하 '설강화')의 역사왜곡 논란 3일 만에 나온 입장문은 9개월 전 이야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쯤되면 성의 문제로 비칠 수 있다.

지난 3월 민주화운동 폄훼 등 첫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지자 JTBC는 두 차례 입장문과 함께 "미방영 드라마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정사실인양 포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 마디로 방송을 보고 판단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우려는 컸지만 시청자들은 제작진을 믿고 한 발 물러섰다.

당시에도 조짐은 있었다. JTBC는 남자 주인공의 간첩 설정, 안기부 요원에 대한 미화 설정 등 제기된 문제에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파 공작원과 그를 쫓는 안기부 요원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등의 '동문서답'만 반복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흘렀다. 시청자들 사이에는 제작진이 방송 전에 사태를 인지했으니 문제 소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방송 2회차만에 무너져내렸다. '설강화'는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 받는 '간첩' 남자 주인공과 충실히 간첩만 추적하는, 사연 있는 안기부 캐릭터들을 끝내 고수했다.

방송을 봤지만 문제점들은 그대로였기에 시청자들 반발이 거세게 확산됐다. '설강화'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은 2일 만에 30만명의 동의를 얻었고 '불매' 항의에 제작지원·광고·협찬사 등은 잇따라 지원을 철회했다. 3대 제작지원사 중 두 업체는 이미 사과와 함께 제작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첫 번째 기회는 그렇게 JTBC가 '무리수' 설정을 강행하면서 사라졌다. 이미 '설강화'를 향한 뿌리 깊은 불신은 되돌릴 수 없게 됐다.

3일 간 침묵 끝에 JTBC는 입장을 냈다. '설강화'에 대한 전국민적 비판을 두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며 "(드라마 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방송이 이뤄진 시점에서 '간첩 캐릭터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는 논리는 시청자들의 주된 비판이 아니었다. JTBC 해명처럼 방송에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있는데 '간첩' 남자 주인공을 운동권 학생으로 착각하고, '진짜 간첩'을 쫓는 안기부 요원들의 모습이 당시 국가폭력을 행사하던 권력 기관들의 논리를 정당화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JTBC는 핵심은 피해가고 선택적 피드백만을 내놨다.

이런 논란들은 직접 언급도 없이 "'역사왜곡'과 '민주화 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의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는 한 줄의 호소로 끝났다. 그 이유마저 '스포일러 방지'를 앞세웠다.

'설강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들은 단순 시청자들만이 아니다. 1987년 고문치사로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 측, 6월 항쟁에서 최루탄에 피격 당해 사망한 이한열 열사 측까지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고사하고 이들 국가폭력 피해자 측을 향한 짧은 사과조차 없었다.

이렇듯 두 번째 기회까지도 JTBC에게서 문제해결 의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끝까지 방영하겠다'는 의지는 엿보였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논란의 당사자인 JTBC가 '셀프 기회'를 부여한 모양새다. 그러나 늑장 입장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의 여론은 더욱 싸늘하기만 하다.

1980년대 배경 작품들 많은데…왜 '설강화'만?

CJ ENM, KBS 제공
1980년과 1987년 시대상을 다룬 작품들이 그 동안 없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영화 '택시운전사' '1987'이 있었고, 최근까지 5월 광주 속 비극적 로맨스를 그린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 방송됐다. 이들 작품에도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들이 존재했으며 창작자의 상상력이 가미됐다.

그렇다면 왜 유독 '설강화'만 이 같은 뭇매를 맞는 것일까. 해답은 창작자들의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채 5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이며 당시 국가폭력에 당했던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이 생존해 있다. 또 군부정권을 거쳐 극우 세력까지 이를 북한에 엮어 폄훼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그렇기에 창작자들은 이 시기 역사를 재현하면서 그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혹여 피해자들이 상처 입지 않도록 충분한 고증과 검증을 거쳤다. 그 기저엔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었다.

'설강화'는 1987년이 배경이지만 '민주화운동'이 아닌 '로맨스'에 집중한다. 안기부 등 시대 요소는 가져오되 드라마 시작 전 '가상'이라며 거리를 둔다. 엄혹하면서도 복고스러운 시대의 분위기는 취하고, 정작 그 시대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존중 없이 소외되는 것이다.

똑같이 남남북녀 로맨스를 다룬 '사랑의 불시착'과 비교하면 로맨스 장애물에 '남북 분단' 외에 '시대'가 더해졌다. 결국 '설강화'의 1987년은 남녀 주인공 로맨스의 역경을 위한 극적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JTBC가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츠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입니다."

JTBC가 3차 입장문에 대중을 향해 건넨 한 마디다. 그렇다.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은 침해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제나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 책임 없는, 책임지지 못할 자유는 방종에 불과하다. 과연 JTBC가 9개월 동안 민주화운동 왜곡 우려에 무엇을 책임지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최소한의 수정도 없이 이대로 '설강화' 방영을 강행할 지는 어디까지나 JTBC의 선택이다. 법적으로는 누구도 이를 강제할 권리가 없다. 다만 JTBC가 스스로에게 준 '세 번째 기회'를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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