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가운 입고 간호…"같이 죽자" 환자에게 맞기도

[K방역위기①]
의료인력 부족 심각…'땜질'식 보충만 이어져
"내과 의사 부족하니 외과가 환자 보라는 식"
임상의사·간호인력 OECD의 평균에 못 미쳐
정부 "1200명 지원한다"지만…혼란 가중될 듯

▶ 글 싣는 순서
①비닐 입고 간호…"같이 죽자"는 환자에 맞기도
②병상 기다리며 숨져가는 환자들…"정부가 죽였다"
③재택치료 아닌 '격리'…응급입원에 9시간 걸려
(계속)

이한형 기자
서울의 한 재활전문병원 간호사 A씨는 한 달 전까지 아비규환을 경험했다. 병원 내에서 50명 규모의 집단감염이 발생해 확진자 치료에 투입되면서다. 보건소에서는 환자를 옮길 병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200 병상에 달하는 규모 있는 병원이지만 체계가 없었고 부담은 고스란히 의료진이 떠안았다. 레벨D 방호복이 없어 A씨는 일회용 비닐가운을 뒤집어 쓰고 확진자를 돌봤다. 부실한 장비로 환자를 돌보다 확진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전담치료병상 입원을 대기하던 한 중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고용량 산소치료 장비 등 중환자를 위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서다. 관리가 어려워지자 환자와의 갈등도 생겼다. 한 환자는 "이럴 바엔 같이 죽자"며 간호사의 방호복을 벗기려 달려들기도 했다. 한 간호사는 환자가 뱉은 침을 맞고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A씨와 동료들은 병원 측에 적절한 처우를 요구했지만 사명감을 가지라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사직을 강요하는 식의 행태에 A씨를 비롯한 다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규모가 큰 대학병원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칠곡경북대학교병원 간호사 이현정씨는 매일매일이 버겁다.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으로 간호간병 서비스는 중단됐고 일반 병동의 간호사를 코로나19 병동으로 파견해 메우고 있다.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관리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생기게 됐다.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 중환자를 돌보지 못했고, 환자의 배설물을 한동안 방치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인력 부족해 여기저기서 땜질 중…간호사 실신하기도"

현장에서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코로나19 환자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수급이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병상 부족 문제에 천착하고 있지만 정작 증가하는 환자를 돌볼 의료인력을 충원하는 데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는 생명이 오가는 중환자실에서 드러난다.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돌볼 경우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보호장구만 잘 갖추면 간호에 큰 무리가 없다.

중환자는 많은 경우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 코로나19 관리와 함께 다른 질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또 일반 병실에 없는 복잡한 장비를 다뤄야 해 별도의 훈련도 필요하다. 병원 측에서는 일반 병실 간호사를 파견해 '땜질'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결국 부담은 의료인력의 몫이다.

보건의료노조 부산백병원지부 이성진 사무장은 "코로나19 전담병상에 간호사를 파견하다보니 기존에 일반 중환자실의 간호사가 부족해지고, 그럼 또 일반 병동의 간호사를 중환자실에 보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환자를 전문적으로 볼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면서 장비 미숙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가 실제로 생기고 있다"며 "내과 의사가 부족하니 외과 의사보고 환자를 대신 보라고 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부산백병원의 경우 코로나19 중환자 9명을 보기 위해 8명의 간호사가 팀을 나눠 투입된다. 4명이 2시간씩 음압병실에서 환자를 간호하고 교대하는 식이다. 교대로 나온 팀은 병실 밖에서 약물 조달 등 업무를 한다.

문제는 우주복처럼 레벨D 방호복과 호흡후드를 쓰고 4시간 근무하다보니 근무 중 탈진하는 간호사들이 생긴다고 이 사무장은 전했다.

의료진들이 페이스 쉴드를 착용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올해 7월 OECD가 발간한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 자료에 따르면, OECD국가와 비교할때 우리나라의 임상의사, 간호인력(간호사·간호조무사) 등 인적 자원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임상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5명으로 OECD국가의 평균 3.6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보다 적은 곳은 폴란드와 멕시코뿐이다. 간호인력은 1000명당 7.9명으로 OECD 평균 9.4명보다 1.5명 적었고 이중 간호사만 놓고 보면 인구 1천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 7.9명보다 크게 적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회피가능사망률도 OECD국가의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질병 예방 활동과 시의적절한 치료 서비스로 막을 수 있는 사망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회피가능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144명으로 OECD평균인 199.7명보다 낮았다. 인력 부족 문제 등으로 인해 더 많은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이 수치는 2008년 231명, 2013명 182명, 2018년 144명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김경오 간호사는 "처음 병원에 취업할때 한창 메르스 사태로 병원이 시끄럽던 시절이었다"며 "하지만 입사 후 코로나19를 현장 간호사로 마주했을 때 메르스를 겪었던 현장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체계가 하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 인력을 어디서 어떻게 투입할건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보니 간호사들은 이 병동에 환자가 많으면 이 병동으로, 저 병동에 환자가 많아지면 저 병동으로 메뚜기 스케줄을 뛰고 있다"며 "코로나19 환자를 볼 때 얼마나 봐야하는지 인력 기준이 없어 간호사 1명이 환자를 9명까지 봐야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의료인력이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서울의료원의 경우 지난해부터 300명이 넘는 인력이 퇴사했다.


정부 "군의관 등 의료인력 1200명 지원"…현장선 "혼란 가중될듯"

이한형 기자
정부는 인력 부족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달까지 인력 1200명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최소 필요인력을 제외하고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중환자 진료 병원에 배치한다는 조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B씨는 "코로나19 중환자실에는 당뇨병이나 투석 환자 등 다양한 질환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중증환자를 전담으로 볼 수 있는 의료인력이 절실하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중증환자 전담 간호사도 중환자 전문 교육이 완료되는 즉시 중환자실에 투입한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내일 근무할 인력이 부족한 현장에선 '마른 논에 물대기'라는 반응이다.

정부의 인력 확충 계획이 발표되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측은 바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료연대 측은 "현재 공보의나 임시직 의사를 채용하다보디 오히려 현장 간호사 업무가 과중되거나 간호사에게 업무 이관이 이뤄지고 있다"며 "2주마다 교체되는 공보의에게 간호사가 병원 전산시스템을 알려주면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의사는 채혈과 입실에 어려움을 호소해 간호 인력이 대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연대 측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인력이 준비돼 코로나19 비상상황 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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