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통신자료 조회'는 어떻게 수사 관행에서 불법 사찰이 됐나

임태희(오른쪾) 국민의힘 총괄상황본부장이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수처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원 78명과 윤석열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10회, 후보 가족에 대해서는 9회의 불법사찰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왼쪽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소속 의원 상당수는 물론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까지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며 '불법 사찰' 프레임을 전면에 내걸었다. 통신자료 조회가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수준이라며 과거 수년 동안 제기된 문제에 소극적이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윤 후보는 29일 공수처가 야당 의원들의 통신자료를 대거 조회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이 되면 불법 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공수처를 '사찰정보기관'으로 규정했고 국민의힘은 김진욱 공수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다음 날 법사위원회에서 김 처장을 상대로 긴급 현안질의를 한다는 방침이다.
박종민 기자
문제가 된 '통신자료'는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을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 다음, 수사 대상자가 연락한 전화번호가 누구 것인지 확인하고자 하는데, 이 때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 범죄와 관련된 인물이 통화 내역에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따라서 고발사주 의혹의 피의자로 입건된 윤석열 후보와 김웅 의원이 통화한 의원 등 자주 연락한 상당수가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 조회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방식의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 수사의 주요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 그간 검찰 등 수사기관의 입장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고발사주 진상규명 TF 소속 의원들이 지난 10월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씨와 김웅 의원의 통화 녹취록 내용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과 국민의힘 모두 국기문란 수준의 위중한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창원 기자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불법 사찰'이라고 보고 전면적인 공세에 나선 것이다. 권력기관이 대상을 특정한 뒤 이 자가 누구와 연락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게 사찰의 개념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이번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도 "관행이고 법리적으로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또 그간 검찰 등 수사기관이 이번 사례처럼 저인망식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시민단체 등이 수차례 문제제기를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대선 국면에 관련 이슈를 이용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그간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까지, 국회는 수사정보기관이 재판·수사·국가안보 등을 위해 인적사항을 영장 없이 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침묵해왔다. 때문에 최소한 사후 통지라도 해야 한다는 소극적 대안조차 힘을 받지 못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국민의힘은 "대선후보와 야당이 선거를 앞두고 통신기록 조회를 이렇게 많이 당한 경우가 있냐"고 반박한다. 시기적으로 민감한 시점의 통신자료 조회는 사찰에 버금가는 예민한 행위라는 것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가 누구랑 통화를 자주하는지 측근이 누군지 이런 것도 통신기록 조회를 통해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합법 수사를 가장한 고도의 사찰"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법률지원단장(가운데)과 정희용 의원(왼쪽), 권오현 법률자문위원이 지난 22일 서울 대검찰청 민원실에 '야당 국회의원 통신자료 조회 관련 김진욱 공수처장, 최석규 공수처 부장검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민원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검사 출신의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 역시 "집단 범죄를 수사할 때, 여러 사람이 얽힌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서 수사를 할 때 통신자료 조회는 필수적인 수사 기법"이라면서도 "하지만 고발사주 건과 관련해서는 이미 작년 4월과 8월에 범죄행위가 끝났음에도 장기간에 걸쳐 야권에 대한 광범위한 조회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 의원들도 윤 후보 성격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통화를 할 수가 없는데 거의 다 조회 대상이 된 것도 정치 사찰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시기나 규모 면에서 정치사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국민의힘 측 주장이 진정성을 확보하려면,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기본적으로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영장주의 도입 등 근본적 대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지난 27일 "윤 후보 발언과 같이 사찰이 된다면 검찰총장 재직 시절 이뤄진 검찰의 통신자료 요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인가"라고 지적한 이유다. 대선 후보와 그 배우자, 야당 의원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정보인권의 크기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