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완패한 '집회의 자유'…법원도 못지켰다

법원도 못지킨 집회의 자유①
올해 9월까지 법원도 집회요구 71% 기각
10인 이상 집회 인용 '5번'에 그쳐
확진자 폭증한 10월 이후 오히려 '전부' 인용

▶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에 완패한 '집회의 자유'…법원도 못지켰다
②"대규모 시위로 번질지도"…'기우'가 기본권 막아도 될까
③'코로나니까' 1인시위도 금지?…"법원이 굳건했더라면"

스마트이미지 제공
기본권을 사수해야 할 최후의 보루인 법원에서도 지난 2년간 집회·시위의 자유는 코로나19에 '완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권 침해로 인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공공복리'의 위협을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법원마저 최소한의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2월부터 올해 9월 초까지…법원, 집회요구 71% 기각

그래픽=김성기 기자
30일 CBS노컷뉴스가 '감염병'과 '집회'를 동시 키워드로 검색한 집행정지(가처분) 결정문 70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이전까지 법원이 집행정지 인용을 통해 집회·시위를 보장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했다. 이 중 10인 이상 집회가 열린 경우는 5건 뿐이었다.
 
해당 사건들은 시·구청이나 경찰 등 행정기관에서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처분을 내리자 집회 주최측이 금지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것이다. 올해 9월 첫째 주 이후부터 위드코로나 직전인 10월 마지막 주까지 접수된 21건에 대해서는 모두 집행정지 인용(집회허용) 결정이 나왔지만, 그 이전까진 49건 중 35건(71%)이 기각됐다.
 
판결문이 전산 등록된 2000년대 이후 '감염병'을 사유로 한 집회·시위 금지조치가 법원에서 다뤄진 것은 국내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2월이 처음이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등 다른 감염병 위기도 있었지만 당시엔 없던 사건이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면서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집회·시위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돼야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집회·시위는 사실상 매우 엄격한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26일 광화문광장과 서울역, 종로 일대 등 도심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거리두기가 잠시 1단계로 내려갔던 지난해 10~11월 약 40여일을 제외하고는 올해 7월까지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했다.
 
위헌성이 짙은 집회·시위 금지 통고에 대해 시민들은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법원마저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 집회 주최자들은 집회 강행 시 '불법집회'로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법원은 코로나19의 위기 앞에 기본권을 보장하기 보다는 집회·시위를 억압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광복절 집회 후 십자포화 맞은 법원…기본권 무게 내려놔

연합뉴스
긴급성을 요하는 집행정지 사건을 다룰 때 법원은 신청인이 해당 행정처분으로 인해 입게 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그 처분의 효력을 중단함에 따라 '공공복리'에 미칠 중대한 우려를 함께 고려하게 된다.
 
대법원은 2010년 판례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 양자를 비교·교량해 전자를 희생하더라도 후자를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상대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집행정지 사건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백신 패스에 반대하는 헌법소원 기자회견'. 이한형 기자
한편 헌법재판소도 같은 해에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법운영자의 주관적·자의적인 심증이 아니라 구체적인 집회·시위의 장소와 목적, 태양, 내용 등 모든 정황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예측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CBS노컷뉴스가 취합한 총 70건의 결정문에서 모든 법관들이 집회·시위 금지 처분에 대해 "집회는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며 "그 제한으로 인한 손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거나 금전보상으로는 참고 견딜 수 없는 현저히 곤란한 손해"라고 인정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총궐기를 진행한 가운데 경찰 관계자가 집회 참석 인원 299명 제한을 알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다만 이처럼 중요한 집회의 권리가 공공복리에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에선 70%가 넘는 재판부가 "위협이 된다"는 판단을 앞세운 셈이다. 그러나 '위협'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부족했고, 코로나 확산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정치·사회적 공포분위기, 정부의 방역정책 등이 주로 결정문에 서술됐다.

10인 이상 집회가 인용된 5건 중 대표적인 결정이 작년 8월 15일 광복절 집회를 허용한 사건인데, 광복절 이후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해당 결정을 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엄청난 십자포화를 맞았다. 당시 광복절 집회 참여자 2만 8336명 중 코로나 확진자는 280명으로 1%에 그쳐 통상적인 인구집단의 양성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등 집회와 코로나 확진 사이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지난 8월 서울 서소문고가차도 입구에 도심 집회와 시위를 막기 위한 검문소가 설치된 모습. 황진환 기자
그럼에도 이후 서울행정법원에서는 해가 바뀌기 전까지 개천절 집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집회금지처분 집행정지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나왔다. 차량 9대에 각 1명씩 탑승한 집회나 사실상 1인 시위에 해당하는 집회 등 3건만 간신히 열릴 수 있었다. 집회의 권리가 보장됐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랑희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8·15 집회를 허용한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은 매우 과도했고 타당하지도 않았지만 그 이후 사법부가 여론의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사법부는 집회·시위가 마치 코로나 확산의 중대한 문제인 것처럼 매도하고 몰아가는 (부당한) 분위기에서도 계속 자신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정부 방역대책 따라 법원 원칙도 '흔들'

본격적으로 집회금지처분에 법원이 반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중순 이후부터다.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자가 60%를 넘어서고 접종 완료자가 30%를 넘어서면서 객관적 환경이 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규 확진자 수가 작년 같은 시기의 10배로 늘었다. 코로나를 둘러싼 객관적 수치들로 현재 어느 정도의 '위험 상황'에 처해있는 지에 대해 판단하기란 코로나 2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공공복리에 대한 위협을 판단할 객관적·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도 판사가 어떤 사실에 얼마나 가중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며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안정감을 회복한 사회적 분위기 등에 다수의 판사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드코로나가 가까워진 9월 중순 이후엔 집회금지처분에 대해 효력을 정지하는 법원 결정이 잇따랐다는 점에서, 법원이 기본권을 사수하기 보단 정부의 방역대책에 기대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시내 한 대형 쇼핑몰이 나들이객들로 붐비는 모습. 황진환 기자
그 사이 출·퇴근길 대규모 인원이 밀집하는 대중교통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고, 선거나 전당대회 등 정치행사와 프로야구장, 콘서트, 휴가철 공항 등에 수만 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정부가 유독 강하게 규제한 집회에 대해 법원은 자신 있게 맞서지 못했고, 집회 인원수나 장소 등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한 조치에 오히려 부가적인 조건을 더 붙이는 등 제한적인 인용 결정을 내리고 있다.
 
랑희 활동가는 "법원이 조건을 달기 시작하면 집회를 허가제로 고착화시켜버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며 "단순히 집회를 열어줬다며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시끄럽고 훼방이 되는 '집회의 본질'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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