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경계시스템 있는데…최전방 철책 왜 자꾸 뚫리나

'보존GP' 부근에서 월북 사건 발생. 연합뉴스
새해 첫날 강원도 고성 육군 22보병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어 월북한 인물이 지난 2020년 11월 같은 수법으로 귀순했던 남성과 동일 인물로 파악되면서 전방 경계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첨단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있는데도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냐는 얘기다.

특히 22사단은 비슷한 일이 여러 해 동안 수 차례 있었고 그 때마다 대규모 징계와 함께 사단장이 보직해임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과학화경계시스템과 그 운용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순 땐 작전 자체는 이상 없었지만 과학화경계시스템 허점 드러나

이 남성이 처음 귀순했던 지난 2020년 11월 군은 일찍부터 월남 징후를 파악하고, 철책을 넘는 상황을 열상감시장비(TOD)로 포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철책을 넘어온 뒤 약 14시간 30분만에 신병을 확보했다.

군 당국은 일련의 과정이 성공적이라고까지는 평가하지 않았지만, 근처 지형이 매우 험준한데다 군 1차 봉쇄선 안에서 신병을 확보했다는 이유로 작전에 문제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짜 문제는 이 남성이 철책을 넘을 때 과학화경계시스템 경보가 함께 울려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점이다.

철책에 설치된 광망은 일정 수준 이상 힘이 가해지거나 절단되면 경보가 울리고 CCTV가 자동으로 이를 포착하도록 설계돼 있다. 다만 강원도 지역은 기상이 험한 경우가 많아, 바람이 불거나 동물이 건드려도 경보가 울릴 수 있기 때문에 지휘관 판단으로 민감도를 조정해 운용할 수 있다.

이 철책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기둥으로 지탱된다. 이 기둥은 Y자 형태인데 중간쯤에 감지 브라켓, 맨 위에는 감지 유발기가 설치돼 있다. 브라켓 또는 유발기에 일정 수준의 하중이 걸려도 경보가 울린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 남성은 당시 기둥을 타고 올라간 뒤 광망을 타고 넘었다. 기둥에만 하중이 걸렸기 때문에 광망에는 하중이 걸리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해당 기둥에는 예산 문제 등으로 브라켓이 설치돼 있지 않았을 뿐더러, 유발기 또한 설치한 지 5년 정도가 지나 부품 등을 고정하는 나사가 풀려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군은 이밖에도 예산 문제 등으로 모든 철주에 다 설치하지 못한 브라켓을 추가 설치하고, 취약지역에는 감시장비를 추가로 보강하거나 교체할 계획이며 경계시스템 성능 개량을 조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운용하는 장병들에 대한 교육과 정비 시스템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월북 방법도 거의 같지만 문제는 달랐다…합참 "미흡함 있었다"

월북. 연합뉴스
대책이 무색하게도 이 부대는 1년 2개월 뒤 똑같은 인물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월책을 허용했다. 다만 이번에는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막지 못했다는 점이 다르다.

당국이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이 남성은 1월 1일 오후 12시쯤 고성 민간인 출입통제선 CCTV에 포착된 뒤, 같은 날 오후 6시 40분쯤 철책을 넘어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갔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운용하는 상황실엔 경보가 울렸고 초동조치부대가 출동했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하고 복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시점에서 CCTV에 해당 남성이 포착됐고, 이를 알리는 팝업창도 화면에 떴지만 감시병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 남성이 이번엔 구체적으로 어떻게 넘어갔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철책이 손상된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시간 40분 뒤인 오후 9시 20분, 부대는 TOD로 DMZ에서 누군가를 포착하고 신병 확보 작전에 들어갔지만 1시간 20분 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갔다.

DMZ는 지형이 험준하지만 MDL을 기준으로 남북 2km씩이기 때문에 월북자 입장에서는 지뢰지대 문제만 제외하면 북한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짧은 시간 안에 출동해서 확보해야 하는데 DMZ 무단침입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현실적으로 대처가 힘들다.

합참 관계자는 처음 경보가 울리고 나서 초동조치부대까지 출동했는데, 왜 CCTV 영상을 다시 돌려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관련해서 미흡함이 있었고,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에서 현장을 조사해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문제들 한참 전부터 거론돼…'개미 하나 안 놓치는' 경계 자체도 허상

연합뉴스
전비태세검열실이 상황을 아직 살펴보고 있는 만큼 사건의 정확한 전말은 아직 베일 속에 있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이 그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이 도입된 뒤로 최전방에서 관련 근무를 해 본 전현직 군인들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화면을 보면서 이상한 상황을 제때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들은 새나 동물 등이 지나가도 경보(팝업창 이벤트)가 울리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게 끝났다가 정작 제대로 대처해야 할 실제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일선에서는 민감도를 지휘관 판단에 따라 조정해서 운용하고 있다.

과거엔 중요한 지점마다 병력들이 직접 나가서 경계를 서고 순찰을 했지만, 저출생으로 상비병력이 줄어들면서 그 자리는 카메라와 센서 등이 메꾸게 됐다. 하지만 시스템은 자동화돼 있어도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병력이 줄어든 만큼 개개인이 지는 부담도 그만큼 무거워지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2월 고성에서 바다를 헤엄쳐 온 귀순 남성은 군 감시장비에 포착되었고 경보도 울렸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화면에서 육안으로 사람이 눈치채지는 못할 크기였다고 한다.

군은 같은 해 4월 22사단에 인공지능(AI) 경계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해 포착되는 물체를 좀더 빠르고 정확히 식별할 수 있게 하기로 했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이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곳이었다.

한편으론 '개미 하나 안 놓친다'는 구호가 허상임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하며 대신 흔적을 빠르게 찾아내 상황을 끝내는 데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경계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22사단에서는 몇 년 동안 계속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휘관이 여러 차례 보직해임됐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사람이 아니라 경계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 때문이다.

육군 27보병사단장, 특전사령관을 지낸 전인범 퇴역 중장은 2020년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사건 직후 본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군사분계선 240km에서 개미 한 마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면 병력이 200만명은 있어야 한다"며 "최전방이라도 정면이 워낙 넓어서 그야말로 경계만 서는데, 적 흔적을 찾는 일이 주 목적이며 침투하는 과정에서 잡는 것은 쉽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사건 직후 페이스북에 "1개 소대가 1~2km 경계구역을 담당하는 한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철책 지역에 AI를 조속히 도입하고 탐지장비도 더 발전시켜야 한다"며 "국산화해 개발한다고 5~10년을 소비하지 말고 외국에서 이미 개발된 제품을 알아보고, 애꿏은 현장 지휘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선 안 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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