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남북한 통로가 된 고성 철책선

강원도 최전방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 연합뉴스
강원도 고성의 22사단은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어처구니없는 경계 실패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사단장이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도에 사퇴한 사단장만 8명이다.
 
새해 첫 날부터 22사단에서는 이런 사례가 또 발생했다. 2년 전 철책선을 넘어 귀순한 탈북자가 같은 루트를 통해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이 탈북자가 경계망에 포착이 됐는데도 초동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군이 비무장지대에서 수상한 월북 의심자를 발견해 추적에 나선 것은 밤 9시 40분경이다. 그런데 이 월북자는 이미 세 시간 전에 우리 CCTV에 포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철책에 설치된 감시센서도 작동했지만, 아무런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
 
감시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 경보를 울렸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감시장비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명백한 인재(人災)다. 
 
상황병이 CCTV 모니터를 보며 철책선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사단은 강원도 동쪽 끝에 있는 지역을 담당하는 부대다. 육상과 해상을 동시에 경계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책임져야 할 지역이 훨씬 넓다. 그래서인지  여러 가지 사건도 많이 발생했다.
 
2012년 일어났던 '노크귀순' 사건이 발생했던 곳도 이 지역이고 지난해 2월에는 '헤엄귀순' 사건도 있었다. 북한 주민이 오리발을 착용하고 헤엄쳐 귀순했는데, 당시에도 감시 장비가 작동했지만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이쯤 되면 22사단 담당구역은 고성군은 '남북한 통행로'라고 불릴 만 하다. 다시 북으로 돌아간 사람은 2년 전 탈북한 북한주민이다. 군 당군은 일단 대공 용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간첩활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지역의 경계망이 허술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 루트를 통해 북한이 어떤 도발을 시도하거나 대남 공작원을 남파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문재인 정부의 섣부른 대북 유화정책 때문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느슨해지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이런 사례는 빈발했다.
 
'노크귀순' 사건은 2012년 10월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다. 한미연합 훈련이 한창이던 2013년 8월에는 에 북한 주민이 '삼엄한 경계'를 뚫고 강화도 교동도로 귀순했다. 박근혜 정부 때다.
 
최전방의 경계임무를 담당하는 GP초소를 성급하게 철거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GP는 운용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데다, 감시 체계의 고도화로 이미 효용성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시설물이다.
 
2005년의 연천의 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더구나 인구 감소로 입대자원까지 부족한 상황에 효용성이 떨어지는 GP초소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강원도 고성 GP 전경. 연합뉴스
그럼에도 이번 월북사태는 경계실패가 분명하다. 아무리 고도화되고 성능 좋은 장비가 있더라도 결국 경계의 최종적인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보완해야 할 점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또한 목숨을 걸고 남으로 내려온 탈북인들이 남한에 잘 정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제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번에 다시 월북한 탈북인은 남한에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이후 탈북했다가 다시 북으로 돌아간 탈북인은 30명에 이른다.
 
차별과 생활고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단순히 정착금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국방부의 책임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