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화재 역시 예고된 인재…문제는 법의 '허점'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의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이 화재로 불타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 3명이 목숨을 잃은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 한 냉동창고 공사현장. 이 건물의 연면적은 19만9762㎡다.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면적 20만㎡ 이상인 건물을 지을 땐 '성능위주설계'를 필수로 해야 한다. 성능위주설계란 건물의 수용 인원과 구조, 가연물의 종류 등을 고려해 건물 통로와 진화 장비, 피난 설비 등 화재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다.

건물을 지으려는 사업자는 건물 설계도를 관할 소방서에 신고해야 한다. 소방기술사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사업자가 제출한 설계도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정사항을 요청한다.

대형 건물일수록 상주하거나 오고가는 인구가 많은 만큼 대형 화재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번에 불이 난 평택의 한 냉동창고는 공교롭게도 연면적 238㎡ 차이로 이 법령을 피해갈 수 있었다. 성능위주설계는 소방시설을 강화하는 공사이기 때문에 공사비용과 기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일부 시공사들은 의도적으로 기준을 피해서 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경기도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실종됐던 소방관을 태운 구급차가 현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당국도 이러한 '기준 미달' 사례를 익히 알고 있다.

소방시설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소방관은 "정확한 현황 파악은 하지 않았지만, 연면적이 20만㎡보다 아주 조금 작은 대형 건물들을 꽤 봐왔다"며 "이런 건물들은 성능위주설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화재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방 관계자는 "성능위주설계에 따라 방화설비나 탈출로 등을 설치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건설사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것"이라며 "매번 대형 화재 사고 때마다 현장 대응 문제가 지적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관련 법령이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있어야 하는데 없어도 된다'…사람 대신 소화기가 차지


화재 안전 관련 법령의 모호한 해석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가연성 물질이 있는 곳에서 용접 등 불꽃이 튀는 작업을 할 땐 화재감시자를 배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작업을 할 땐, 소화기 등이 갖춰져 있으면 화재감시자를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두고 있다.

때문에 조항을 악용한 사업자들이 사람 대신 소화기를 배치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4월 경기도 이천시 한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작업자 등 38명이 숨졌다. 윤창원 기자

다만, 반복되는 화재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화재예방법)이 올해 12월부터 시행된다. 2020년 4월 당시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시공사는 용접작업을 하면서도 기본적인 안전조치뿐 아니라 화재감시자도 배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화재예방법에는 일정 규모 이상 공사 현장에는 소방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소방안전관리자는 공사 현장의 소방시설을 관리하고 용접 등 화기 취급도 감독하고 관리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법 제정 자체로 안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규정을 준수하는 곳에는 혜택을 주는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석대학교 공하성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제 막 법안이 만들어졌을뿐 세부적인 시행령은 아직인 단계"라며 "아무리 법을 꼼꼼하게 만들더라도 사각지대는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그 중에 하나가 '예외규정'이라는 건데, 예외규정은 말 그대로 아주 특별한 상황에 적용되는 규정인데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법 강화뿐 아니라 안전관리를 잘 하는 곳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스스로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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