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엄숙한 반공에서 경박한 멸공으로

갑툭튀 '멸공'에 환호하며 색깔DNA 부활
신세계 정용진의 인스타는 개인적 취미와 놀이에 불과
민주주의 압살한 엄숙한 반공에 경박한 '멸콩'이라니
노태우 북방정책과 박근혜 천안문 망루의 기억
시대착오적 '색깔론'으로 정권교체 신세계는 오지 않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전 인천 연수구 송도센트럴파크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국민의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색깔' DNA가 있는 것 같다.
 
10년 전 새누리당이 당의 상징 색깔을 빨강색으로 바꿀 때만 해도 보수 정당이 이제 더 이상 레드콤플렉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물론, 이후에도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간혹 색깔 공세를 펴기도 했지만 별로 약빨이 없음을 국민의힘도 익히 느꼈을 터.
 
2022년 대선에 '멸공'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SSG(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6일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린게 발화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인스타그램 캡처
이틀 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을 올리며 멸치와 콩을 해시태그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이어,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장 보는 사진과 함께 "오늘 저녁 이마트에서 멸치, 콩, 자유시간. 그리고 토요야식거리 국물떡볶이까지. 멸공! 자유!"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이후,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과 김진태 전 의원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멸공 챌린지에 동참하며 멸공의 목소리를 힘차게 외쳤다.
 
'공산주의를 박멸하자'는 멸공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반공 보다 펀치력에서 훨씬 강하다.
 
반공은 냉전시대 군부독재정권이 통치를 합리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애용한 정치적 구호다.
 
반공의 공기는 너무나 엄숙해 수많은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다.
 
총선과 지방선거,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반공은 레드컴플렉스로 진화해 적어도 1997년 대선 때까지는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반공보다 더 센 멸공이 재벌기업 부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소속 정치인들이 쌍수를 들어 찬동하고 있다.
 
재벌기업 오너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야 시장자유주의자로서 공산주의를 혐오할 수 있다.
 
7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정 부회장은 진작부터 기업인이자 프로야구 구단주로서 이런 방식의 대중적인 소통 방식을 즐겨왔다.
 
그러나, 정용진 부회장이 스스로를 정치적 인플루언서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정당이나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도 없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은 프로야구 타 구단을 조롱하고 경쟁사인 롯데백화점을 불쑥 방문한 사진처럼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편하게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 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인사들이 마치 정 부회장의 '멸공'이 마치 21세기에 부활한 시대정신인 마냥 멸치와 콩 사진까지 얹어가며 찬양하는 모습은 경박하기 그지 없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멸공 챌린지'에 나선 것은 2030 세대의 반중국 정서를 자극해 지지율을 반등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철지난 이념 상업주의로 등돌린 2030 세대가 다시 돌아올지 의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공산주의 시장을 포기하고 공산당과 중국, 시진핑, 북한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가 있는 모습. CCTV화면 캡처
국민의힘은 일찍이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으로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시진핑 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집권의 역사가 민주당 보다 길고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정당과 대선후보의 외교정책이 그깟 멸치와 콩 사진으로 대변되어서는 안된다.
 
소셜미디어상에 챌린지는 함께 좋은 뜻을 모으자는 선한 캠페인이 취지다.
 
그런 챌린지를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활용할 전략이라면 보다 공익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내용이면 좋을 것이다.
 
'멸공' 해시태그는 정용진 부회장의 취미나 놀이 정도로 그쳐야 즐겁다. 
 
국민들이 이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멸공을 외치며 방문하지는 않는다.
 
'멸공' 구호가 여전히 매력적인 구호라는 시대착오적 생각에 빠져있다면 국민의힘에게 정권교체라는 신세계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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