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오영수, 깐부 벗고 프로이트로…'라스트 세션' 관람기

파크컴퍼니 제공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대학로 티오엠(TOM). 영하 10도 강추위가 찾아 왔지만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장 앞 매표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관객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공연장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객석을 꽉 채운 300여명의 관객은 때론 숨죽인 채, 때론 웃음을 터뜨리며 연극에 몰입했다. 두 배우의 위트 넘치는 지적 논쟁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날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전날 제79회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78)와 이상윤(41)이 무대에 올랐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지만 복귀작으로 연극을 택했다.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쏟아진 인터뷰 요청도 모두 고사했다. 대신 이날 공연 준비에만 몰두했다. 50여년간 연극 외길을 걸어 온 노배우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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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세션은 2020년 초연 후 2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났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한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프로이트는 오영수와 신구가, 루이스는 이상윤과 전박찬이 연기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는 두 석학의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에 있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무신론을 적극 옹호한다. 루이스와의 만남도 프로이트의 초대로 성사됐다.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회심한 루이스가 신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변증(정반합)하는지 궁금해 한다.

논쟁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오영수의 프로이트는 날카로우면서 여유 있다. 반면 이상윤의 루이스는 빈틈 없고 안정적이다.

신의 존재 유무를 화두로 한 논쟁은 삶과 죽음, 욕망과 고통, 사랑에 대한 주제로 뻗어나간다. 정반대 세계관을 가진 두 학자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는 것에는 단호하지만 논쟁을 할수록 드러나는 서로의 나약함을 연민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다.

생소한 정신분석학 단어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유머가 깃든 대사 덕분에 관객들이 웃는 장면이 제법 많다. 또한 리드미컬한 대사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프로이트의 연구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무대, 방독면·보철판 등 당시 시대상과 프로이트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소품을 보는 재미도 크다. 배우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어느 조합으로 봐도 만족할 듯 싶다. 오영수가 출연한다는 사실 말고도 관람할 이유가 충분하다. 1월 공연 회차는 대부분 매진됐다. 대학로 TOM에서 3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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