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만 수사하고 이성윤만 나오면 흔들려[공수처1년]

지난해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서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제막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제대로 수사하라는 사명을 띠고 탄생했다. 이를 위해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도 깨뜨렸다. 이 바탕에는 검찰이 독점적 기소권을 남용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했다는 성찰적 의미가 깔려 있다. 참여연대에서 처음 공수처 설치를 제안한 1996년부터 줄지어 발의된 여러개의 공수처법에는 검찰 고위직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비리 의혹을 고리로 독립적인 수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담겼다. 오는 21일로 출범 1주년을 맞은 공수처가 이같은 열망을 충족시켰을까?

법조계를 비롯한 세간의 시선은 우려를 넘어 차갑기까지 하다. 공수처 탄생의 가장 큰 화두였던 '공정성' 결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전 검찰총장)와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대하는 공수처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공수처는 야당의 대선주자로 거듭나 여권을 향해 날을 세우는 전직 검찰총장이 연루된 사건에는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 반면 친여(親與)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고검장 사건에 직면할 때는 이런 적극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사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공수처 직접 수사 13건 가운데 윤석열 사건만 4건

공수처가 직접 수사한 것으로 알려진 13건 가운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전 검찰총장)에 대한 사건만 4건이다. 공수처 직수 사건 3건중 한 건은 윤석열 관련 사건이었던 셈이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 △고발 사주 의혹 △판사사찰 의혹으로, 모두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사건들이다. 윤석열 관련 사건만 만나면 보여주는 공수처의 적극성은 유별날 정도다. 검사와 수사관이 반쪽만 채워져 인력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옵티머스 사건과 한명숙 사건에 대한 수사 개시를 결정했다. 윤 후보가 정치 행보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공수처가 지난해 가장 많은 수사 인력을 집중한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서도 공수처는 혐의가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윤 후보를 입건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하지만 수사 착수 4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 시점까지 윤 후보를 소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특혜' 의혹을 일으켰다. 지난해 3월말 처·차장만 있는 상황에서 이 고검장에 대한 조사를 했다가 처장의 차를 내주는 '에스코트 조사'를 했다는 지적만 받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이후에는 이 고검장이 차를 갈아타는 영상이 담긴 CCTV가 공무상 비밀인데 유출됐다며 내사를 하다가 언론 뒷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내사를 하며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를 하고 기자들에 대해서는 통신영장까지 친 탓에 통신사찰 논란을 일으켰다. '공제 4호'로 직접 수사에 착수한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도 마찬가지다. 재판정에서 모두 공개되는 공소장이 비밀에 해당하는지조차 법조계에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공수처는 과감하게 직접 수사를 결정했다. 이 고검장이 공소장을 받기도 전에 언론에 보도가 돼, 공소장에 나온 인물들에 대한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고검장 뿐 아니라 공소장의 인물들이 친여 성향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역시 공수처가 수사하면서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하고 기자들에 대한 통신영장을 청구해 언론 자유 침해 문제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통신 사찰' 논란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고, 이로 인해 공수처 폐지론까지 대두됐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현 정부에 유리해 보이는 사건에는 신속했지만….

공수처은 현 정권에 유리해 보이는 사건에서는 신속하게 칼을 들이댔지만 현 정권에 불리해 보이는 사건에서는 늦거나 아예 칼을 들이대지조차 않았다. '검사 1호' 사건인 이규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검사는 대검 진상조사단(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조사 실무기구)에 파견됐을 당시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의 내용을 상당 부분 허위 이거나 왜곡·과장했으며, 일부는 그대로 언론에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청와대로까지 의혹이 확산했다. 공수처는 친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검사의 사건을 직접 착수에 돌입하는 데까지만 해도 '두 달'을 허비했다. 수사에 돌입하자마자 이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까지 벌이며 수사를 확대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올인 하면서 이 검사 사건은 사실상 흐지부지 되다 지난 해 검찰로 넘어갔다. 공수처가 이 검사 사건을 들고 있었던 시간은 무려 9개월. 중앙지검이 같은 사건의 다른 혐의를 수사하기 때문에 검찰에 넘겼다고 이유를 댔지만 이런 지적은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했을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였다.

불공정성만큼이나 능력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공수처는 지난해 1월 21일 출범 이후 지난달 21일까지 총 2766건의 사건을 접수했다. 이 가운데 △입건은 24건, △불입건은 315건, △이첩은 1642건을 했다. △분석 중인 사건은 785건이라고 밝혔다. 입건이 24건이라고 밝혔지만, 직접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주요 사건은 13건이다. 이 가운데 공수처는 딱 '두 건'만 처리할 수 있었다. '공수처 1호' 사건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별 채용 의혹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다. 기소를 할 수 없는 교육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선택한 탓에 기소로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검사 1호' 사건인 이규원 사건은 지난해 말 검찰에 이첩했다. 수사기관의 실적을 '기소'라고 본다면, 공수처 출범 첫 해 실적은 없는 상황이다. (공수처가 기소 의견으로 조 교육감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검찰이 이에 대해 해를 넘기지 않고 기소를 하긴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 사찰 규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고위공직자 부패 사건은 외면…수사기관 or 검찰견제 기관?


전문가들은 공수처가 자신의 설립 취지부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공수처의 원래 목적은 고위공직자의 부패 방지로, 이 부분에 목적을 맞춰야 한다"면서 "그런데 지금의 공수처가 출범할 당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겠다는 부분이 부각됐다. 현재 공수처는 본래의 목적은 잊고 검찰 견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공수처가 지금 현재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 두 개의 큰 흐름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며 "직권남용은 형법에서도 어디까지를 범죄라고 봐야 할 지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 이를 고리로 수사가 시작되다보니 무리한 수사가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것이 시대적 과제지만, 검찰이 하는 모든 시시콜콜한 실수와 잘못까지도 공수처가 수사해 검찰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건 정말 잘못됐다"면서 "검찰 권력이 남용되는 사례 같은 것들을 면밀하게 따져 권력형 범죄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정치권이 급하게 공수처라는 조직을 만들어놓긴 했는데, 우리 정치와 권력 체계 속에서 공수처가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했다"면서 "어떤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고 국민들에게 공유하느냐 이런 부분들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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