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땐 콘크리트 공사 중단해야 안전한데"…터질게 터졌다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박요진 기자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건설업계의 관행이 곪아터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자재인 콘크리트의 특성상 혹한기와 혹서기엔 공사를 중단하거나 시공하더라도 이후 관리를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지만, 공사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하권 추위 뚫고 콘크리트 붓고 또 붓고…39층 작업 때 와르르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불량 콘크리트 사용과 시공 불량 문제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 물 등이 혼합된 재료인데 한겨울에는 물이 얼고 한여름에는 증발하기 때문에 콘크리트를 붓는 시점도 중요하고 완전히 굳기까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강도로 굳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타설(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 작업)과 양생(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보호하는 작업)이 세밀하게 진행되어야 하지만 정해진 공기를 맞추기 위해 공사를 강행하다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냐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이 의심하는 지점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 등에 따르면 화정아이파크는 영하권의 추위를 뚫고 타설 작업이 여러 차례 이뤄졌다. 사고 당일인 11일 현장에는 강풍에 눈발이 몰아치고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광주에는 2.3cm의 눈이 왔고 최저 기온은 영하 3.5도였다. 당시 현장 근로자 8명은 오전부터 201동 39층 바닥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했고, 그러던 중 오후 3시 47분쯤 39층에서 23층까지 연쇄 붕괴가 일어났다. 화정아이파크는 2021년 12월 31일에도 타설이 이뤄졌는데 이날 광주의 최저 기온은 영하 4.4도였다.
 

"4도 이하면 특수콘크리트 사용하고 영하 3도 그마저도 붓지 말아야"

 
스마트이미지 제공
전문가들은 영하의 날씨에는 콘크리트가 제대로 시공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콘크리트가 덜 마르고 강도가 떨어져 추가 타설 시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정아이파크의 경우 콘크리트가 접착제 역할을 했다면 무너질 때 철근이 끊겨야 하는데 사고 현장의 철근은 원형 그대로 분리됐다.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인 안형준 교수는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철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온도가 4도 이하인 겨울철에는 보통 콘크리트가 아니라 품질 확보가 가능한 혼화제를 넣은 한중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하고 영하 3도 이하가 되면 콘크리트 타설을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이어 "타설 후에도 콘크리트에 비닐막을 씌우거나 온풍기를 틀어서 주변 온도를 10~20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이번 광주 공사 현장 사고는 정밀 안전 진단을 통해 (온도 등 당시 상황에 맞게) 현장에서 타설을 제대로 했는지, 이후 양생은 어떻게 했는지 등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최창식 교수도 "콘크리트의 특성상 겨울에는 강도 발현이 늦게 되기 때문에 보온과 양생을 잘 해야 하는데 현장 상황을 보니 지켜야 할 부분들을 놓치지 않았나 싶다"며 "콘크리트의 원재료인 시멘트와 모래, 자갈 등이 괜찮았는지(불량여부), (타설과 양생 등) 강도 발현을 위한 품질관리를 잘 했는지, 콘크리트가 제대로 된 강도를 발현할 때까지 잭서포트가 잘 받쳐졌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근로자는 경찰에서 "붕괴 직전 일부층에서 콘크리트가 얼어 붙은 '동해(凍害)' 현상을 발견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혹한 땐 공사 중단 안전하지만 영하에 눈·비 내려도 대부분 공사"

아파트 공사. 이한형 기자
근로자들도 혹한기 콘크리트 작업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온 등과 무관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한다.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 송성주 사무국장은 "영하에 타설 등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눈이나 비가 내려도 타설은 한다"며 "겨울에 쓸 수 있는 콘크리트가 따로 있지만 그것도 충분한 양생 기간이 지켜져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사무국장은 이어 "양생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도로공사 등 정부에서 하는 공공 공사는 동절기에는 잘 하지 않는다"며 "겨울에 작업을 하더라도 충분한 기간을 보장하지만 일반 현장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금융 비용과 타워크레인 등 대형 장비 대여 비용은 공사를 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나가는 비용들"이라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휴일도 없이 24시간 공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인데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혹한이라고 공사를 중단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처럼 붕괴 참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시공 문제가 발견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공개된 국내 건설시공사 공개별점 현황을 보면 국내 상위 20대 건설사(시공능력평가 기준) 중 상당수 업체가 2020년 콘크리트 시공상 문제가 적발돼 벌점을 받았다.
 
A건설사는 △콘크리트의 타설 및 양생과정의 소홀 △콘크리트의 균열 발생 △콘크리트 재료분리의 발생 등이 적발돼 벌점을 받았고, B건설사도 콘크리트의 타설 및 양생과정 소홀 등으로 벌점을 받았다. C건설사도 콘크리트면의 균열 발생 등이 적발돼 여러기관으로부터 벌점을 받았고, D건설사도 콘크리트의 타설 및 양생과정 소홀 등이 확인돼 벌점이 부과됐다. 공개벌점은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이 발주한 공사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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