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학대' 의혹 동물병원의 진단서엔 '모든 건 보호자 동의'

3만 원 받고 발급해준 진단서엔 '보호자 동의' 강조
사실과 다른 점 확인하려면 진료부 필요한데 '발급 의무 없어'
수의사협회, "진료부 공개하면 오남용 우려"

약 17년 전부터 과잉 진료 및 동물 학대로 의심받은 한 동물병원 원장이 문제가 생긴 동물 보호자들의 연락을 피하다가 최근 들어 수수료를 받고 진단서를 발급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기사: [단독]병원가면 죽어나온 강아지들…한 동물병원 수상한 '17년')

1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충남 아산시 A동물병원 측은 최근 진단서 발급을 요구하는 고객들에게 수수료 3만 원을 받고 진단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진단서들에는 '보호자의 동의를 얻었다'는 점이 강조돼 있는데, 피해자들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상당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아산시 A동물병원의 진단서 발급 대장. 독자 제공

A동물병원 진단서는 동물 보호자가 직접 요청했을 때, 발급 비용 3만 원을 선납하고 발급 대장 항목을 모두 작성하면 받을 수 있다. 또 진단서를 직접 수령하려면 3일, 우편으로 받으려면 일주일이 걸린다. A동물병원은 이 같은 방식을 내규에 따라 정했다고 밝혔다.

수의사법(12조)에 따르면 수의사는 직접 진료하거나 검안한 동물에 대한 진단서, 검안서, 증명서 또는 처방전의 발급을 요구받았을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서는 안 된다. 진단서 발급 수수료나 방식에 대해서는 법률상 규정된 것은 없다.

피해자들은 병원 측이 뒤늦게 발급한 진단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수의사법상(32조) 진단서를 거짓으로 발급하면 면허 정지 사유가 된다.
A동물병원에서 율무의 비루관 개통술(눈물샘 수술)을 하고 난 후 병원 측이 보호자에게 보낸 사진과 (왼쪽 하단)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은 이후 율무의 술부 모습. 독자 제공

지난 15일 병원에 방문해 3일을 기다려 진단서를 받은 포메라니안 율무 보호자 박모(29)씨는 "진단서를 봉투에 넣어놨길래 바로 꺼내 읽어보려고 하니까 '집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면서 "처음에 양쪽 다리 다 슬개골 탈구 수술을 했다고 했는데 (진단서에서) 한쪽은 안 했다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한쪽 다리는 동의도 안 받고 수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메라니안 율무의 진단서. 독자 제공


또 "(진단서에) '퇴원할 때 보호자에게 정상적 보행과 수술 부위의 정상적 상태를 확인시켰다'고 돼 있는데 거짓말"이라며 "(율무를) 나무 케이지에서 꺼내 바로 이동 가방에 넣었는데 수술 부위가 정상인 것을 확인하지 않았고, 피딱지가 심해 물었더니 '소독약'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율무는 비루관 개통술과 슬개골 탈구 수술을 한 후 술부가 열리는 등 피해를 겪었는데, 비루관 개통술을 한 내용은 진단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

A동물병원에서 비루관 개통술(눈물샘 수술)을 하고 퇴원한 율무 모습. 독자 제공


피부병으로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다 죽은 닥스훈트 뭉치 보호자 정하윤(40)씨 역시 "(진단서에 나와 있는) 간과 신장 기능 저하 얘기는 죽고 나서 혈액 검사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고 말한 것"이라며 "(보호자에게 유선으로 강아지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다고 설명한 내용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장이 '치료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고 덧붙였다.
닥스훈트 뭉치의 진단서. 독자 제공

또 해당 진단서 '예후 소견'에는 '보호자 동의를 받아', '보호자가 선호하는' 등 문구가 반복되는데 이는 피해자들과 법적 분쟁 중인 병원 측이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병원 측이 보호자들에게 설명한 적 없는 엑스레이(X-ray) 검사 결과나 보여주지 않은 혈액 검사 결과 등도 진단서에 적혀 있었다. 해당 검사 결과들이 실제 동물들의 증상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소위 '진료 차트'라고 불리는 진료부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데, 현행 수의사법상 동물병원은 진료부를 보호자에게 발급할 의무가 없다.

사람을 상대로 한 치료에서 의사에게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를 명시한 의료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동물병원 측이 입원 치료 후 죽거나 수술하고 피부가 개복되는 등 피해를 본 동물들에 대해 "진료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며 "억울하면 소송을 하라"는 식으로 응대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때문에 동물병원을 통해 피해를 본 보호자들은 진료부 공개 및 발급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부병 집중 치료를 받다 A동물병원 원장 자택에서 죽은 뭉치 장례식 사진. 독자 제공

이와 관련, 국회에 계류 중인 수의사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 발의)에는 '동물 소유자가 소송을 통해 수의사에게 진료부를 요구해도 발급을 강제할 수 없어 수의료 사고 시 동물 소유자와의 분쟁의 원인이 된다'며 수의사가 진료부 발급을 거부할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있다.

지난해 6월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 발의)에도 '수의사에게 진료부, 검안부에 대한 발급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아 동물 보호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동물을 진료한 수의사에게 진료부 기록 등을 동물 보호자가 요구할 시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국 수의사 2만여 명을 대표하는 대한수의사회는 "약물이 오남용되고 동물 의료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행 수의사법은 산업동물과 반려동물 구분이 돼 있지 않은데 산업동물 같은 경우 가축의 주인들이 약을 사다 써서 오남용 우려가 있다"며 "부작용에 대한 보완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진료부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발생한 수의사에 대한 책임 부분에서는 "현재 수의사법상 협회에 비윤리적인 면허자에 대한 면허 정지나 취소 요구 권한이 없다"면서 "실질적인 징계 권한이 있어야 조사 권한도 있을 텐데 지금은 보호자들 요구는 있지만 저희가 어떤 역할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변진극 대한동물약국협회 대표는 "자신이 키우는 동물에 대해 의사가 어떤 진료를 했는지, 어떤 검사를 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 권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의사들이 진단명이나 검사 결과도 알려주지 않는 등 동물병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동물약국에 오는 분들이 많다"며 "진료부 공개를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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