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는 호텔, 구조대원은 천막…현대산업개발의 두얼굴

[아파트붕괴]
현산 간부는 호텔, 구조대원은 붕괴 건물-천막 오가며 토막 휴식
실종자 가족들 "가족과 함께 직장도 잃을 처지"…생계 지원책 요구
자원봉사자들 "현산 대처, 학동 참사 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어"

붕괴 잔해 야적장 재수색. 광주시소방본부 제공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11일째, 구조 당국과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수색과 현장 수습에 너나 할 것 없이 소매를 걷어붙였지만 정작 사고 당사자인 HDC 현대산업개발(현산) 측의 진정성에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붙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시공사로서 사고에 책임을 지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수 차례 밝혔지만 밤낮 없이 실종자과 현장 수습에 나선 이들이 마시는 피로회복제조차 아깝다며 지원할 수 없다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작업 중 간이천막에서 간신히 숨을 돌리는 구조대원들은 유명 호텔에 머무는 현대산업개발 간부들이 아닌, 자발적 봉사에 나선 시민들의 도움으로 추위 속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현산 간부 숙소는 호텔, 구조대원·봉사자는 간이천막서 겨우 한숨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 일대에 설치된 구조대 천막. 이곳은 구조대 지휘와 대원 휴식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박요진 기자
사고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인근에 마련된 천막과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지휘소 겸 휴식장소로 쓰이는 이곳에서 매일 오전 7시쯤 상황판단회의를 진행한 뒤 오전 7시 30분쯤 현장에 투입된다. 이후 밤 9시 전후까지 수색을 하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지 않은 탓에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겨우 끼니를 때우거나 이마저도 못하는 구조대원들은 천막이나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라면, 도시락, 빵 등을 먹고 있는 실정이다.
 
화장실도 주변에 마련된 임시 화장실과 주변 상가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앞서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는 적극적인 실종자 수색을 위해 붕괴 건물 고층부에 전진 지휘소를 건물 20층에 설치했다. 전진 지휘소가 설치됐지만 고층부에 위치해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구조대원들은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참사의 원흉인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의 간부들은 천막에서 지내는 구조대원들과 달리 광주의 한 호텔과 사고 현장 인근 오피스텔 등에 거처를 마련하고 수습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가족 숙소는 마련됐지만 앞으로 삶은 '막막'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건물 상층부. 유대용 기자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 인근의 숙소를 정하고 17~20개 방을 사용하고 있다.
 
숙박비용은 실종자 수습을 완료할 때까지 현대산업개발이 제공한다.
 
당장 머물 곳은 마련했지만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 앞길이 막막하다는 게 실종자 가족들의 설명이다.
 
사고 이후 애타게 가족의 생사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 나날이 길어지면서 가족뿐만 아니라 직장까지 잃을 처지에 놓였다.
 
실제 경찰은 지난 17일 현장 지원 중 실종자 가족 A씨가 해고당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용노동부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통보했다.
 
A씨는 지난 11일 오후 3시 47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39층 규모 아파트 건물이 붕괴한 직후 아들과 함께 현장에서 실종자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고향의 한 사회복지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가족의 실종 소식에 한달음에 광주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타지에 머물며 직장에 출근하지 못한 A씨는 혹시나 해고당하는 것은 아닌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HDC그룹 정몽규 회장은 지난 17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사고 현장을 찾아 사과문을 낭독했다. 유대용 기자
A씨는 지난 17일 HDC그룹 정몽규 회장이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 "우리는 직장까지 잃게 생겼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다행히 직장에서는 A씨의 업무를 어떻게 나눠 맡을지 의견만 나눴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A씨의 업무를 다른 직원들이 분담하는 과정을 해고 수순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추후 A씨가 해고되지 않고 휴직처리 될 수 있도록 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된 A씨의 가족을 비롯해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5명은 대다수가 50~60대로 한 가족의 가장이다.
 
다른 실종자 가족 B씨는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생계를 보탰지만 정기적인 수입은 없다"며 "대학생인 아들까지 생계를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가족 협의회 대표 안모씨는 "가족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한 장기화된 구조로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절망하고 있다"며 "현대산업개발이 먼저 나서 생계대책을 마련해야지 피해자 가족들이 먼저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촉구했다.

피로회복제 지원도 인색…봉사자들 "학동 참사 때와 똑같아"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건물 상층부 내부. 피해자 가족 협의회 제공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직후 붕괴된 아파트에 대해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하겠다며 사고 수습을 약속했지만 정작 사고 수습에 힘쓰는 구조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먹을 약품에 대해선 지원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광주 서구청은 최근 연고와 압박붕대 등 60여만 원 상당의 상비약을 구입해 현대산업개발에 금액을 청구했지만 피로회복제 등은 빠졌기 때문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학동 참사 당시에도 동구청에 의료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피로회복제 등은 결제해주지 않았다"며 "실종자 수색을 위해 철야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현장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제공하는데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자원봉사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사고수습 현장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며 "학동 참사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자치21 기우식 사무처장도 "사고수습에 들어가 비용은 전적으로 사고 책임인 현대산업개발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서구청은 최대한 사고 현장을 지원하고 나중에 구상권 청구하고 그러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당국이 이문제를 가지고 왜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현대산업개발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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