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 역시 이 목록에 들어있다. 북한이 일관된 목표 하에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어쩌면 2019년 연말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거대한 힘'을 들먹일 때부터 다 계획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북한이 정말 모라토리엄을 깬다면 한반도는 다시 2017년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평창올림픽과 판문점 회담, 싱가포르 회담 등을 거치며 힘겹게 지탱해온 4년여의 짧은 평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게 아님을 확인하는 엄중한 순간이다.
북핵 모라토리엄 깨지나…美 현상유지 전략에 北 반발 시간문제
이는 북한식 '전략적 인내'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북한에게 모라토리엄은 미국에 "선결적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 구축 조치들"이다. 하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보상 대신 적대시 정책의 지속이었다. 북한의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 비춰 매우 불공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에 흥미를 잃었고 바이든 행정부도 적당히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Talk without conditions)를 고수할 뿐 유인책 제시에는 매우 인색하다.
北 '적대시 철회' 요구에 美 '무조건 대화'로 일축…사실상 힘의 논리
그러나 북한이 제재완화에 목을 매고 있음을 간파한 미국이 이를 들어줄리 만무하다. 북한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하고 트럼프 시기를 거치며 더 강화된 워싱턴 토양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노이 노딜에는 분명 트럼프 책임도 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북한이 모두 덤터기를 썼다.
결국 '조건 없는 대화'는 합리적이고 공정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실재는 힘의 논리이다. 조건 없이 대화하자며 시혜를 베푸는 듯하지만 실상은 무조건(unconditional) 대화에 나서라는 압박이다. 북한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조건, 즉 '조건 없는 대화'의 조건을 되풀이 발신하며 지난 1년이 흘러간 셈이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는 "북한의 입장은 하노이 회담 때 우리(북한)가 내건 것에 대해 미국이 뭘 어떻게 한다든지, 아니면 (미국이) 싱가포르 회담 관련한 어떤 액션을 취한다든지 얘기해야 하는데 그냥 미지근하다는 것"이라며 "미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략적 인내'로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 조건 놓고 바이든 1년 허비…韓 차기 정부 시작부터 안보 위기
하지만 북미는 더 이상 '탐색적 대화'가 필요한 단계가 아니다. 수차례 정상회담을 한 만큼 서로의 입장 정도는 잘 파악하고 있다. 좀 거칠게 단순화시킨다면, 하노이 회담 때 결렬된 지점에서 재출발해도 된다. 기껏 어렵게 일군 성과를 부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북한의 태세 전환으로 '조건 없는 대화'조차 이제는 한가한 얘기가 됐다.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깬다면 유엔 제재는 물론 과거 '코피 전략' 같은 군사적 대응도 거론될 수 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협조할지는 의문이다.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차기 한국 정부는 시작부터 엄청난 안보 위기를 넘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