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중대재해법' 시행…벌써 勞使가 법 개정 요구하는 이유는?

노동자·시민 사망사고 등에 사업주·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27일부터 시행
사업주 등이 안전조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중대재해 발생하면 징역형 가능
경영계 "법 조항 너무 모호해…대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편"
노동계 "실제 중대재해 80% 이상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빠져…수사 이뤄져도 처벌까지 헛점 너무 많아"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자들이 아파트 부실공사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27일부터 상시노동자 50명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업장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직접 물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노사 양측은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법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사업주 등 안전조치 소홀히 해서 노동자·시민 목숨 잃으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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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는 노동자가 숨지거나 중상을 입는 등의 '중대산업재해'와 작업장 밖의 일반 시민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우선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같은 유해 요인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등의 요건 중 하나 이상 해당하는 산업재해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같은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같은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들이다.

다만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반드시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법에 따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행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이행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명령한 개선 시정 등을 이행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 등 크게 4가지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약 ①중대재해가 발생했고 ②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위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③이 때문에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드러날 경우에 처벌이 이뤄진다.

만약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원 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이, 부상자 및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진다.


'적절히·충분한' 조치가 무슨 뜻? 모호한 법 규정에 기업들 혼란 여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연합뉴스
문제는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가 정확히 어떤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 또 각 기업에서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여야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직도 모호하단 점이다.

예를 들어 '경영책임자'의 경우, 중대재해법 제2조 9호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대표이사로 명확하지만,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일 71개 기업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관련 애로사항으로 '모호한 법조항'(해석 어려움)이 43.2%를 차지해 1위로 꼽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승태 산업안전팀장은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의 범위나 의무 내용 등 여러 가지 규정들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엄한 형벌을 부과하는 법률"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누가, 무엇을, 어느 정도로 이행해야 법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이 시행됨에 따라 현장 혼란은 물론, 처벌을 받는 기업들이 발생했을 때 경영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업종과 기업마다 지배구조나 재해 예방 대비 수준이 서로 달라 단일한 기준을 딱 잘라 제시하기 어렵다면서, 사실상 기업들 각자의 자율적인 노력에 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안경덕 장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 전국기관장 회의 주재. 연합뉴스
앞서 중대산업재해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법 해설서 및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여기에서도 '적절한', '충분한' 등 모호한 표현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신 정부 당국은 각 업종별 특성에 따라 사업주 등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을 꼼꼼하게 담은 '자율점검표'를 배포하는 한편, 실제 기업 현장을 전문가들이 직접 찾아가 사업주 등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도록 컨설팅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제조업, 건설업, 화학업종 등의 취약사업장 3500곳을 대상으로 컨설팅 신청을 받고, 소규모 사업장은 올해 1조 1천억 원 규모로 증액된 산재예방 지원사업 예산으로 안전관리 역량 향상을 위한 재정‧기술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기업들로서는 관련 판례가 충분히 모여서 자세한 기준이 확립될 때까지는 안전 문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노동부 안경덕 장관도 최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앞으로 법이 시행돼 판례가 쌓이면 (기준이) 가시화될 것이고, 시행령 등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중대재해 80% 집중된 소규모 사업장은 법 적용 유예·제외…勞 "수사하더라도 제대로 처벌될까" 우려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빈틈투성이' 법이라면서,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헛점은 실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집중되는 소규모 사업장이 정작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유예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828명 가운데 법 적용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5인 미만' 사업장(317명, 38.3%)과, 법 적용이 유예된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351명, 42.4%)의 비중이 80.7%에 달할 정도다.

정부도 대기업의 경우 이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일정 수준 이상 갖춘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장 중대재해법으로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50인 이상 10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인과관계 추정조항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기 때문에 중대재해법 수사 대상이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제외·유예 문제와 함께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중대재해법은 박주민·이탄희 민주당 의원 발의안에서 △사고 직전 5년 동안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3회 이상 확인되거나 △사업주가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는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조항을 담았지만, '범죄의 입증책임'을 과도하게 확대한다는 이유로 삭제된 바 있다.

최 실장은 또 "경영책임자에게 현장 종사자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있는데, 실제 노동자들이 어떻게 위험을 제기했는지, 종사자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를 형식적인 서류 절차 등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 실무를 수사·기소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산재 사망사고가 잦은 건설업의 경우, 주요 원인이 공기 단축, 위험 공법 문제"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는 관련 내용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거나, 발주부터 설계, 시공, 감리 등에 대한 안전 의무를 부여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노사 모두 중대재해법의 한계에 우려를 던지는 가운데, 결국 관건은 앞으로 중대재해 사례들이 실제로 어떤 처분을 받을 것인지에 법 제도의 안착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산재사고 사망자가 700명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중증 부상, 질병재해나 시민재해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매일 2, 3명씩 중대재해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법 시행 직후 초기 사례가 어떤 선례로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법 제도의 안착 여부와 여론의 향방이 갈릴 것"이라며 "예를 들어 만약 법 시행 직후 초기 중대재해가 대규모로 발생하거나,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나타난다면 중대재해법 시행 찬성 여론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만 여론의 관심 속에 정부가 중대재해 사업주에 직접 면죄부를 주기는 어려운 만큼, 중대재해 의심사례가 발생하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실제 관건은 사법당국이 중대재해법을 어떤 기준을 갖고 적용할 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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