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빙상, 쇼트트랙만 있나' 얼음 위의 육상, 자존심 지킨다[베이징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에 출전한 이승훈(오른쪽부터),정재원, 김민석이 준우승 후 관중석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한국 빙상은 전통적으로 쇼트트랙이 효자 종목이었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 24개를 휩쓸었다. 한국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 은메달 13개, 동메달 11개를 따냈는데 이를 합쳐야 금메달 숫자와 같다. 그만큼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최근 올림픽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도 만만치 않았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당시 빙속 3총사 이상화, 이승훈(IHQ), 모태범이 금메달 3개를 깜짝 수확하며 강세를 보였다. 당시 이정수가 금메달 2개를 따낸 쇼트트랙보다 금메달 갯수가 많았다.

이후에도 '빙속 여제' 이상화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여자 500m 2연패를 달성하며 금빛 소식을 전했다. 장거리 황제 이승훈도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자존심을 세웠고, 4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는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평창올림픽에서는 이밖에도 이상화가 500m에서 값진 은메달을 보탰고, 차민규(의정부시청)도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수확했다. 김민석(성남시청) 역시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빙속 강국의 위상을 세웠다. 김보름(강원도청) 역시 노선영과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에도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따내며 펑펑 울었다.

하지만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금맥은 끊길 가능성이 적잖다. 밴쿠버 삼총사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은 이승훈도 34살 세월의 무게에 메달을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매스스타트가 이승훈처럼 경기 후반 스퍼트를 하기보다 초반부터 스피드를 내는 추세인 까닭도 있다.

대한체육회도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의 목표를 금메달 1~2개로 잡았는데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사실상 금빛 질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2010년 밴쿠버 삼총사의 깜짝 등장처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베이징을 벼르고 있다. 당시도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의 금메달을 예상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갑툭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사실상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금메달보다는 메달 자체만 나와도 고맙다고 할 정도"라면서도 "그러나 당일 컨디션 등에 따라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고 귀띔한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주연을 꿈꾸는 정재원. 연합뉴스
​​

가장 기대를 모으는 선수는 정재원(의정부시청)이다. 정재원은 남자 매스스타트와 팀 추월에 출전한다.

4년 전 평창올림픽 당시 고교생이던 정재원은 남자 매스스타트 세계 랭킹 1위 이승훈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경쟁자들과 레이스 중반까지 페이스를 맞추면 힘을 비축했던 이승훈이 스퍼트를 하는 전략이 적중해 한국은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희생양 논란이 일었지만 정재원은 "평창올림픽에서 형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일축했다. 3명이 출전하는 팀 추월에서 맏형 이승훈이 가장 체력 소모가 큰 선두에 서서 김민석, 정재원 등 후배들을 이끌었다는 것. 은메달 합작에 큰 공을 세운 만큼 막내인 자신이 맏형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승훈도 매스스타트 우승 뒤 정재원의 손을 번쩍 들어 관중의 환호에 함께 인사를 했다.

4년이 지나 정재원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도약을 꿈꾼다. 올 시즌 월드컵 3차 대회 4위 등 정재원은 매스스타트 랭킹 4위에 올라 있다. 공교롭게도 이승훈보다 한 계단 앞서 있다. 정재원은 베이징올림픽에 대해 "이번 올림픽은 긴장하지 않고 모든 것을 후회 없이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여자 매스스타트의 김보름 역시 2회 연속 메달을 노린다. 차민규와 김민석 등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자존심을 걸고 출전한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 종목 중 가장 많은 금메달 14개가 걸려 있다. 하계올림픽의 육상, 수영처럼 빙상 종목의 근간을 이루는 셈이다. 쇼트트랙 역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파생된 점을 감안하면 동계 종목의 기본으로 할 만하다. 과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베이징에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