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배만 불리는 '쪼개기 상장'…피멍드는 개미

LG화학 개인주주들, LG엔솔 물적분할 후 주가 급락…분노
외국은 주주보호가 당연시…우리나라, 여러 가지 법적 보완책 목소리 높아
상법 제382조에 '주주보호' 의무 명시해야 한다 의견 높아
대선 주자들도 저마다 개인투자자 보호 위한 해결책 제시

연합뉴스
LG화학 투자자인 회사원 김 모(49)씨는 최근 LG엔솔 공모주 청약 관련 소식을 들으면 한숨만 나온다. 그는 "제가 살 때만 해도 정말 '황제주'라고들 했거든요. 그런데 배터리 사업부 빠지고 그냥 석유화학 회사가 돼 버린 거라서. '앙꼬없는 찐빵'이 따로 없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윳돈 1억원 가량을 투자했던 그는 큰 손해를 보고 LG화학을 '손절'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청약 자금이 114조 원을 넘었고, 청약자 수도 44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축포'를 바라보며 LG엔솔 모회사인 LG화학 소액주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LG엔솔은 LG화학에서 배터리 부문을 떼어내 별도 상장한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통해 만들어졌다. 알짜 사업이 분할되면서, 1년 전 주당 100만 원이 넘던 LG화학 주가는 70만 원 아래로 떨어졌고 배터리 사업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했던 소액 주주들은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LG화학 대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하며 10조 원을 유치하는 이득을 봤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분석리포트에서 LG화학 주가 하락에 대해 "고성장 자회사의 상장에 따라 대체제(LG엔솔)가 나타나면서 투자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했고, 기업공개로 자금 흐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자회사(신설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는 방식이다. 모회사 주주에게는 신설 자회사 주식을 주지 않고 상장과정에서 모회사 지분은 낮아진다. 분할한 자회사가 상장되면, 모회사는 기업가치가 깎이며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대주주나 오너는 자신이 가진 모회사 지분율을 떨어트리지 않으며 지배력을 확보하면서도 신규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린다. 최대주주의 주식을 황금주로 만드는데 일반 주주의 자금이 이용되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페이 공모주 청약 첫 날에 서울 영등포구 한국투자증권 여의도본점 영업장에서 고객들이 카카오페이 청약 상담을 받는 모습. 황진환 기자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였다. 카카오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언택트 산업의 전망을 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핵심 사업들을 차례로 물적분할한 뒤 상장시켰다. 대주주는 엄청난 자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배력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알짜 사업들을 빼낸 카카오의 주가는 최고가 대비 절반가량 하락한 8만 원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과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물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상장 공시 이후 주가가 고점 대비 많게는 30% 가까이 하락하며 불만을 샀다. 앞으로도 물적분할을 통한 자회사 상장이 줄을 서있다. 이미 카카오모빌리티와 SSG닷컴 등도 물적 분할 뒤 별도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계속되는 물적분할 논란에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물적분할 후 재상장 이슈가 나올 때마다 SNS뿐 아니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나온다. 한 청와대 국민청원 청원인은 "기업의 물적분할을 금지시켜 달라. 누구를 위해 물적분할 제도를 존치시키는 것이냐"며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역시 물적분할 후 자회사 재상장이 개인투자자의 주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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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으로 일단 거론되는 것은 상법 개정안이다. 상법 제382조에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사가 '회사'만이 아닌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상훈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경우 법에 자세히 규정돼 있지 않아도 회사의 주주보호 의무가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에 '회사'라고만 돼 있다는 점 때문에 개인 주주들의 집단소송도 여의치 않은데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상법에 명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의무(SIS)와 이해상충 해소의무를 도입하는 것을 법의 기본 원칙으로 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궁극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업 활동 속에서 주주보호를 위해서는 선진적인 기업 문화와 의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기존주주에게 신주인수권 부여 등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때 기존 모회사 주주에 신주인수권 부여, 공모주 우선배정, 물적분할 결정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을 비롯해 주주평등의 원칙을 구현할 수 있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논란을 의식한 듯 적극적인 모습이다. 물적분할을 필두로 한 상장사 쪼개기에 소액 투자자들의 반감이 커진 것을 고려한 것이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달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 동시상장, 경영진 스톡옵션 행사와 관련한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물적분할 심사과정에서 모회사 주주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이 같은 방식은 자본시장법, 상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상장 심사 시 모회사 주주 의견을 들었는지 여부는 법이나 규정 개정이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투자협회의 증권인수업무 규정 개정을 통해 할 수 있는 모회사 주주 우선배정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야 대선주자들도 저마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SNS에  '물적 분할 후 재상장 금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물적 분할 뒤 공모주를 청약할 때 모회사 주주들에게 일정 비율의 신주인수권을 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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