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올림픽 '한복' 분노…자성도 빠질 수 없겠죠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참가자가 중국 국기 게양식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박종민 기자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광막한 벌판 저쪽으로 기를 쓰고 도망가고 있었다. 그들은 압록강과 두만강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끝> 덧붙임: 그들은 그날 이후 오늘날까지 그때를 '해방'이라 부르지 않고 '그 사변'이나 '그때 사변'이라 부르며 살고 있다. - 조정래 소설 '아리랑' 중에서


일제시대 우리 민족 통한의 역사를 길어 올린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해방 소식을 듣고 만주에서 조국으로 되돌아오려던 수많은 조선 사람들은 일제 탓에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중국 사람들에 가로막혀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은 또다시 참혹한 역사의 수렁에 휘말려 들어갔다. 그들이 해방의 기쁨을 오롯이 누릴 수 없었던 이유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北京)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한복이 등장한 것을 두고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중국 정부가 한복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화공정'을 벌이고 있다는 데 따른 분노였다.

중국이 배려 없는 자국중심주의적 행태로 주변국을 자극하는 흐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탓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반중 기류가 갈수록 강해지는 추세다. 그만큼 21세기 패권을 꿈꾸는 중국의 초상도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인류 역사에서 헤게모니는 늘 '다양성'과 '공존'의 품에 안겨 왔던 까닭이다.

다만 이번 올림픽 개막식의 한복에 대한 커다란 분노를 단순히 민족적 감정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것에 얽힌 우리네 민족의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의 무게가 너무나도 버겁게 다가온다.

개막식을 중계한 중국 중앙(CC)TV는 한복이 등장한 장면에서 "전국 각 분야에서 모인 우수한 대표들과 56개 민족 대표들이 손에 손으로 전달하며 오성홍기를 나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우리와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동포들이 현지 소수민족으로 편입된 것은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두만강 북쪽 만주 땅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그곳을 항일 무장 투쟁의 본거지로 삼았다. 독립을 쟁취하려는 조선인들과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제는 만주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는 등 커다란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1945년 일제 패망 뒤에도 만주 조선인들은 마음대로 조국에 되돌아올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중국 안에서 삶과 터전을 이어가기 위한 또 다른 싸움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처절한 투쟁의 열매가 바로 지금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에 들어선 조선족자치주다.

이들 중국동포는 여전히 한반도와 언어, 복식, 음식 등 전통 문화를 공유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근거 없는 편견에 휩싸여 있다. 최근까지도 영화 등 다수 매체에서 사회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표현돼 중국동포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에서 중국의 문화공정을 향한 분노만큼이나, 중국 내 동포에 대한 우리네 자성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패권국을 꿈꾸면서도 편협한 자국중심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중국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갖춰야 할 자세가 있다. 현지 소수민족으로 편입돼 삶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일부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헤게모니는 언제나 다양성과 공존의 편에 서는 법이다. 혐오와 갈등을 키워 이익을 얻으려는 소수 권력자들의 일그러진 행태, 그것에 맞설 의지와 실천 역시 그 터전 위에서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