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약한 대응, 검찰의 수수방관…스토킹 '사각지대'

경찰 신청한 구속영장 검찰 반려 뒤 이틀 만에 참극
스토킹 범죄 대응 대책, 영장청구권 앞에서 무용지물?
경찰-검찰 엇박자 속에 책임 소재 불분명
"스토킹 범죄 특성 이해하고, 현장 판단 우선 해야"

'신변보호 여성 살해' 피의자 야산서 숨진 채 발견. 연합뉴스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대상자인 여성이 또 다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스토킹 범죄 대응에 있어 경찰-검찰의 손발이 좀처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 신병 확보를 위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반려한 뒤 이틀 만에 참극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 김병찬, 이석준 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은 스토킹 등 사회적 약자 범죄 대응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 확보와 영장 집행 등 강력 조치를 위해선 영장청구권을 가진 검찰의 협조가 동반돼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경찰 입장에서는 검찰의 영장 반려를, 검찰 입장에서는 경찰의 미진한 수사를 각각 빌미로 삼는 상황에서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지는 양상이다. 영장을 최종적으로 발부하는 법원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사 및 사법당국 틈에서 생긴 '사각지대' 속에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놓여진 모양새다.

1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40대 여성 A씨(중국 국적)는 살해되기 사흘 전인 지난 11일 폭행 및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50대 남성 조모씨(중국 국적)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와 조씨는 2년간 교제하다 지난해 헤어졌다. 하지만 결별 후에도 조씨는 A씨에게 지속적인 위협을 가했으며, 급기야 지난 9일 A씨가 운영하는 호프집에 찾아가 깨진 맥주병으로 협박하고 폭행을 벌였다. A씨는 이후 성폭행 피해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고소 사실을 알게 되자 11일 오후 5시쯤 다시 A씨의 호프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A씨를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하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한편, 조씨는 유치장에 입감한 뒤 특수협박, 강간, 스토킹 혐의 등으로 12일 새벽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영장은 검찰에 의해 반려됐다. 검찰은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체포 후 9시간 만에 풀려난 조씨는 지난 14일 오후 10시 13분쯤 A씨 가게를 찾아가 A씨를 살해하고 도주했다. 경찰은 신고 3분 만에 현장에 출동했지만 조씨는 이미 달아났으며, 지난 15일 오전 조씨 역시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사건에서 구속영장 반려는 아쉬운 대목으로 풀이된다. 구속을 통해 가해자 신병 확보가 이뤄졌다면 이 같은 참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관측이다. 검찰의 영장 반려 이유는 일부 혐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 등으로 전해졌는데, 특히 스토킹 혐의 부분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현장에서 직접 사건을 대면하는 경찰의 인식과 서류상으로 판단하는 검찰의 인식차가 벌어진 셈이다.

일선서 여성청소년 수사를 담당하는 한 수사관은 "구체적인 증거나 근거들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긴 하지만 시간적 한계상 현장의 심각성을 자료상으로 모두 담아내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며 "빠른 신병 확보가 필요할 경우, 이를 전달할 수 있는 긴밀한 채널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각종 조치 역시 이번 사건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스토킹 '심각' 단계로 상향분류하면서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 1호(피해자 및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와 2호(전화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적용했다. 하지만 범행을 작심한 가해자의 접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 피의자를 유치해 피해자와 분리하는 '잠정조치 4호' 역시 스토킹 혐의와 관련한 보완수사가 필요해 신청이 바로 되지 않았다. 잠정조치 4호 결정은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하기에 그만큰 혐의 입증 및 신중성을 기해야 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 김병찬, 이석준 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은 스토킹 사건에 대한 대응체계를 세분화하고, 피의자 체포 등 대응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약자 범죄 대응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대책의 실효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영장청구권을 가진 검찰의 협조 없이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토킹. 연합뉴스
한편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스토킹 등 사회적 약자 범죄 특별 전수점검에 따르면 재범 및 피해자 위해 우려가 있어 구속영장을 신청한 23건 중에 발부는 3건에 불과했다. 피의자 유치 신청 역시 8건 중 결정은 2건으로 나타났다.

결국 스토킹 범죄에 있어 경검이 함께 대응력을 높이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참모회의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경이 조속하게 강구해 여성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접근 금지 등 긴급응급조치 등은 범행을 마음 먹고 달려든 범죄자들을 막기에는 실효성이 없다"며 "검찰은 영장청구권을 통해 여전히 경찰을 통제하려 하고, 교과서적인 구속 요건만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당국과 사법당국 모두 스토킹 범죄에 대한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현장 판단을 우선 시 해서 법적인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