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탄소세' vs 尹 '원전'…향후 5년 기후정책 향방은?

[탄소문명의 종말⑤]
대선후보 4인 기후공약 비교·분석
위기대응이냐 산업재편이냐…접근 방식 차이
이·심 재생에너지 vs 윤·안 원자력에너지
전기료·핵폐기물 등 불편한 미래는 '회피'

▶ 글 싣는 순서
①수출 길마저 위태…코앞에 닥친 탄소국경세 장벽
②코로나19는 시작…빙하 속 전염병 눈뜨나
③땅속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동토연구자의 증언
④온실가스 '응답하라 2000'…밀린 숙제 몰려온다
⑤李 '탄소세' vs 尹 '원전'…향후 5년 기후정책 향방은?
(계속)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이미 19세기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지구 온도가 1.1도 올랐고, 현재 추세라면 7년 5개월 뒤에 0.4도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본다. 1.5도는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 온도 상승 한계점이다. 사진은 7년 261일 남은 시점에서 기후시계를 든 원주민. Climate Clock 홈페이지 캡처.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남은 시간 7년 5개월. 그 중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다음 달 9일 치러진다.
 
'기후대통령'을 자처하며 사회적 아젠다 형성을 1번 공약으로 제시한 후보가 있는가 하면, 급격하게 탄소 배출량을 줄일 현실적인 방안으로 '원전 최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도 있다. 주요정당 후보 4인의 공약은 대동소이한 부분도, 첨예하게 상호 대립하는 부분도 있다.
 
17일 남은 대선, 탄소를 뿜어내는 '기후악당'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권좌에 옹립할 한 사람을 선택한다. 선택의 결과는 우리나라의 장래를 0.4도 상승을 막아낸 '기후변화의 영웅', 혹은 '기후변화의 패배자' 중 어느 쪽으로든 내몰 수 있다.
 

'1.5도'까지 7년 5개월 중 '5년', 실전 적용할 기후공약은?


각 후보의 '10대 공약'에서 나타난 기후에너지 관련 공약 우선순위와 내용. 심상정 후보는 다른 후보에 비해 관련 공약이 많아 일부 생략했다.

지난 13일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각 후보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자신의 대표 공약 10가지를 제출했다. 기후공약이 위치한 순서와 범주가 어디인지를 통해서도 각 후보의 입장차가 드러난다.
 
기후공약을 10개 중 1번 순위에 제시한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유일했다. 심 후보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의로운 탈탄소사회로의 전환'을 1번 공약으로 내걸고 그 안에 △기후에너지부 신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CD) 상향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 0%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50% 달성 등의 내용을 담았다.
 
기후공약을 '보건의료·환경' 범주로 포함시키면서 △미세먼지 상시노출 노동자 보호 강화 △고준위핵폐기물 직접영구처분 △환경오염피해 사후구제조치 강화 등도 강조했다.
 
반면 다른 3명의 후보는 경제나 산업 부문에 환경 범주를 연결해 제시했다. 심 후보와 비교하면 이재명-안철수-윤석열 후보 순으로 기후 문제에 할애한 분량이 적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번 공약인 '경제·산업' 부문의 하위주제로 '에너지 대전환'을 언급했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30% 달성을 위한 입지확보 △재생에너지 생산·유통·판매 시스템 구축 △온실가스 다배출업종의 탈탄소 전환지원 △취약산업 종사자 전환지원 등이 구체적 내용이다. 특히 △도로, 항공 중심의 교통 체계에서 철도 교통 체계로 대 전환하는 국가교통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10번 공약인 '경제·환경' 부문에서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 추진, 스마트 농어촌으로 식량주권 확보'를 공약했다. 세부 내용으로는 △혁신형 차세대원전(SMR,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 국책사업 추진 △신한울 3·4호기 즉시 공사재개 △기후위기법 제정 및 국가기후위원회 설치 등을 담았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에서 상향조정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2018년 대비 40%)를 재조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9번 공약인 '환경·산업'부문에서 '실현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제시했다. 윤 후보도 지난해 말 경북 울진을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약속한 바 있다. 또 구체적인 수치는 못박지 않았지만 '과학기술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실현가능한 NDC'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안 후보와 마찬가지로 당선 시 현재 NDC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재명·심상정·안철수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후에너지부나 국가기후위원회가 설치돼 환경부와 산업부, 탄소중립위원회 등 각 부처별로 제각각이던 기후 대응 조직이 통일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 탄소중립과 관련한 정부 조직개편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적은 없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무엇을 30% 이상 가져갈 것인가


실질적으로 네 후보의 입장차가 가장 쉽고 명료하게 확인되는 부분은 전력 생산원의 비중을 논하는 '에너지믹스'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은 2018년의 에너지믹스 구성에선 석탄발전량이 41.9%로 가장 많고 이어 LNG 26.8%, 원자력 23.4%, 신재생 6.2% 순이었다.
 
2030년 어떤 에너지를 주요 전력원으로 쓸 지에 대한 후보별 목표.

탄소배출량이 많은 석탄발전을 차츰 멈추는 대신 그 발전량을 떠안을 전력원으로 이재명·심상정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윤석열 후보는 원자력에너지를 택했다. 안철수 후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같게 설정했다.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믹스 구성은 현 정부에서 지난해 10월 국제사회에 제출한 NDC 내용과 일치한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30.2%로 가장 많고 이어 원자력 23.9%, 석탄 21.8%, LNG 19.5% 순이다.
 
심상정 후보는 더 파격적이다.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은 0%로 만들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50%까지 높인다. 나머지 발전비중은 LNG 25%, 원자력 23%로 채운다.
 
윤석열 후보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35%선으로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5%대로 유지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석탄발전 비중을 낮추는 데는 동의하지만 LNG를 포함한 전체 화석에너지 비중은 40~45%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안철수 후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각각 35%로 동일하게 설정했다. 나머지 30%는 '기타 에너지'라고 언급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력원을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재명·윤석열·안철수 후보 당선 시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심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세 후보가 중 당선자가 나온다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사실상 폐기 수순이다. 이 후보도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더는 신규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이미 설계를 마친 신한울 3·4호기에 대해선 '국민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2060년 원자력 발전비중을 0%로 만든다는 게 '탈원전'의 핵심이라면 이 후보 당선 시엔 그 시기가 2085년 이후로 늦춰지고, 윤·안 후보 당선 시엔 원자력 발전비중이 오히려 더 높아지게 된다.
 

전기료·핵폐기물 처리 등…불편한 미래는 '회피'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는 후보들에겐 구체적인 기술발전과 적용 로드맵이 없고 원자력을 내세우는 후보들은 사용후핵연료(핵폐기물) 처리 방안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료는 얼마나 올려야 할지, 탄소세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등 재원마련 방안도 부실하다.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윤·안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당장 1순위 발전원으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지형적 특성상 수력·풍력발전이 어렵고 태양광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기술혁신의 수준이 낮아 생산단가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울산 남구 SK에너지의 ESS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 현장. 울산소방본부 제공

이에 대해 이 후보와 심 후보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와 대대적인 투자가 중요하다고 한다. 사업자들의 재생에너지 구매시스템이나 지역주민의 재생에너지 수익 분배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점도 덧붙인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인 에너지저장장치(ESS) 가동 비용 문제는 물론이고 관련 사고까지 잇따르는 상황에서 해당 기술이 언제쯤 얼마나 안정화될지는 미지수다.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국민이 전기료 상승을 얼마나 감내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말하지 않는다. 전기요금과 관련한 시민단체 그린피스의 질의에 대해 이 후보는 "전기요금 합리화가 중요하다"면서도 "물가와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시기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애매한 답변을 했다. 같은 질의에 대해 심 후보는 "각종 환경비용을 반영해 전기요금이 현실화될 경우 인상이 불가피하므로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 지원정책과 에너지수요관리, 에너지 효율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14일 시청역 앞 서울광장에서 핵발전소 반대 캠패인을 벌이고 있는 환경운동 단체 활동가들. 녹색연합 제공
한편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한 윤·안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핵폐기물 처리 문제지만, 이와 관련해 딱히 해법을 제시한 바 없는 등 명쾌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윤 후보는 지난해 울진 방문에서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거의 한계 상황까지 오긴 했지만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며 "원전을 중단시킬 정도는 아니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당장은 급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임기 중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소재 지역에선 최대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두고 '급하지 않다'고 한 발언해 질타를 받았지만, 이번 10대 공약에도 관련 내용은 없다.
 
다만 윤 후보는 지난 3일 대선후보 첫 토론회에서 'RE100'을 몰라 논란이 된 후 두 번째 토론회에선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으로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을 언급했다. 안 후보도 이를 10대 공약에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방안으로 꼽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를 지금처럼 수조에 저장하는 등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건식 방법으로 재처리해 다시 핵연료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아직 상용화된 적이 없고 연구·개발 단계다.
 
이밖에도 후보들은 기후공약의 재원마련 방안으로 탄소세 도입(이재명·심상정), 탄소중립을 위한 과학기술 개발과 관련한 연구개발비 확대(안철수) 등을 언급한다. 현재도 심한 산업계의 반발에 맞서 유의미한 수준의 탄소세 징수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윤 후보는 종합적인 세제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 외엔 기후문제와 관련한 특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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