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가족에 돈 부친 그날…타버린 코리안드림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던 이주노동자, 화재로 사망
가설건축물 숙소 사용 금지 조항…무용지물로 전락
신고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인 탓에 법망 피해가

불에 탄 컨테이너 숙소 앞에 A씨의 신발이 놓여 있다. 이준석 기자

회사에서 제공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던 이주노동자가 화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식품공장에서 근무하던 인도 국적의 A(46)씨다. 그는 지난 2019년 난민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 취직했다.

A씨는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스스로 문제의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그에겐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A씨를 알고 지냈던 근처 공장 노동자들은 A씨가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했다. 사고를 당한 그날에도, A씨는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나가 전날 받은 월급을 가족에게 부친 뒤 컨테이너로 돌아왔다.

화재가 발생해 인도 국적 노동자가 숨진 경기 파주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하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온 그의 안식처는 너무나 열악했다.

9평 남짓(27㎡)의 공간에 냉장고, 옷장, 신발장, 식기류, 싱크대, 침대를 제외하면 남는 공간이 별로 없었다. 화장실도 없었다. 물론 소화기나 화재경보기 같은 화재예방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또 컨테이너는 바람만을 막아줄 뿐 영하의 추위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컨테이너 의 한 켠에는 형태만 알아볼 수 있던 히터 한 대와 소주병이 널브러진 상태였다. 취기와 작은 온기로 추위를 버텨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주거 환경속에서 생활하다 화를 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12월에는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30대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씨가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생을 마감했다. 그가 누워있던 비닐하우스는 보일러조차 가동되지 않았다.

청와대 앞에서 최저임금 차별금지 등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부랴부랴 고용노동부는 외국인노동자 근로여건 개선 방침을 내놓고 이주노동자에게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다만 지자체에서 가설건축물을 활용해도 된다는 신고필증을 받으면 고용 및 재고용 허가를 내주겠다는 예외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A씨가 생활하던 컨테이너는 파주시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가설건축물이었다. 불법에 의한 사각지대에서 A씨의 목숨은 사그라들었다.

고용노동부의 이주노동자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월 기준 농어업 이주노동자 99%가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하는데 이 가운데 69.6%가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가 이뤄진지 1년이 조금 지난 현재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이 개선됐을까.

A씨의 죽음은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그들도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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