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공방전' 늪에 빠진 윤석열…이대남 의식했나

2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초청 3차 법정 TV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2일 열린 TV토론에서 젠더(gender) 이슈를 두고 다른 경쟁 후보들의 공동 전선에 맞서 난타전을 벌였다. 윤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을 두고 20대 남성 표심을 얻기 위한 갈라치기 전략이라는 상대 후보들의 비판과 별개로, 캠프 내부에선 미숙한 대응으로 상당 부분 타격을 입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3차 TV토론에서는 사회 분야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젠더 이슈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1월 초 선대위 개편 당시 윤 후보는 청년 중심으로 선대위를 재구성하겠다고 밝히면서 내놓은 공약 중 하나가 바로 '여가부 폐지'였다. 해당 공약을 SNS에 게재 후 20대 남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윤 후보는 지지율 급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남녀 갈라치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는 이같은 입장을 유지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빈틈을 파고 들었다.
 
민주당 이 후보는 토론에서 "저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성차별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느냐"고 윤 후보에게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여성과 남성을 집합적으로 이렇게 나눠서 이걸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떤 범죄를 피해를 당한다거나 또는 공정하지 못한 처우를 받았을 때 거기에 대해서 우리 공동체가 강력하게 대응해서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후보가 "말씀의 취지가 이해가 안 되는데,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라고 재차 물은 후에도 윤 후보가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자, 이 후보는 "있냐, 없냐"고 단답형을 압박했다. 이에 윤 후보는 "완전히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접근을 해야 되느냐 말씀드린 것"이라고 애매한 답변을 내놨고, 이 후보는 "완전히 없는 것하고, 없는 것하고 무슨 차인지 모르겠다"고 마무리 지었다. 이에 윤 후보는 "질문을 정확하게 하라"고 발끈했다.
 
기존 입장을 고수하긴 했지만 윤 후보 캠프 내부에선 매끄럽지 못한 답변으로 상당 부분 타격을 입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선대본부 소속 한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공약에선 이대남들을 향한 걸 내놓을 순 있는데 전 연령층이 보는 TV토론에선 대통령의 리더십에 어울리는 답변이 아니었다"며 "지금은 서로 중도층을 누가 더 차지하느냐의 싸움인데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시대 상황을 반영한 평등의 개념에서 설명하면서 기술적으로 넘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선 제3차 초청후보자 토론회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윤 후보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언급한 '성인지 예산' 관련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날 토론에선 이 후보와 심 후보가 해당 이슈를 두고 윤 후보를 향한 공동 전선을 형성했다. 이 후보가 윤 후보를 향해 "성인지 예산이 구체적으로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성인지 예산에 어떤 걸 삭감해서 국방비에 쓸 수 있는지 말해달라"고 하자, 윤 후보는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예산들 중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차원으로 만들어놓은 예산들"이라고 했다.
 
윤 후보는 지난달 27일 경북 포항 유세에서 "우리 정부가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원이나 썼다고 알려져 있다"며 "그 중 일부만 떼어내도 우리가 북한의 말도 안 되는 핵 위협을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성인지 예산'과 '성인지 감수성 예산'을 혼동하긴 했지만 여성 관련 예산을 삭감해 국방비 증액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여성을 위한 예산으로 특별히 있는 게 아니라 윤 후보의 정책 중에도 범죄피해자보호지원사업, 한부모지원 강화사업 이런 게 다 성인지 예산"이라며 "나라살림이나 행정에 대해서 모르고 마구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곧 이어진 주도권 토론에서 심 후보도 "성인지 예산은 제가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된 것"이라며 "아직도 성인지 예산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이에 윤 후보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인지 예산 관련 공방전을 통해 젠더 이슈에서 윤 후보가 독선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예산 등 국정운영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면이 부각된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날 토론에서 본격적으로 젠더 이슈를 꺼내든 사람은 이 후보였다는 점이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관련 권력형 성범죄에 연루된 인사들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다소 불리한 주제라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이 후보는 토론 주제를 언급하기 전에 대국민 사과를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 윤 후보를 향해 역공을 가한 것이다. 윤 후보 선대본부 소속 또 다른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동안 권력형 성범죄는 죄다 민주당이 저질렀는데 정작 토론에선 윤 후보가 공격을 당했다"며 "좋은 포지션에 있었지만 이 후보의 토론 기술에 말려든 것"이라고 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