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끊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에 '환대 손길'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접경인 시레트 검문소 앞 모습.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비롯해 이들을 돕기 위한 루마니아 소방대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오요셉 기자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루마니아 북동부 지역, 시레트(Siret).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가 된 지난 9일, 시레트 국경 검문소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밤새 눈이 내린 추운 날씨와 칼바람 속에서도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행렬은 낮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루마니아 소방대원의 안내를 받아 쉼터로 이동하는 피란민들의 얼굴엔 국경을 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깊은 근심과 슬픔의 감정이 묻어 나왔다.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쉼터로 이동하고 있다. 오요셉 기자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피란민은 지금까지 약 200만 명으로, 대부분이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만 18세부터 60세 남자를 대상으로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피란민 대부분은 남편과 아버지, 남자 형제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발렌티나씨는 "18살과 20살인 두 남동생과 함께 국경까지 왔지만, 남동생들은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혼자서만 오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발렌티나씨는 "마치 고아가 된 것 같은 심정"이라며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 서로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리나씨도 9개월 된 딸과 둘이서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글리나씨는 "어머니와 아기를 위한 피란 루트가 있어 다행히 어린 딸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며 "3일에 걸쳐 국경을 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설명했다.


크이우에서 3일에 걸쳐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온 글리나 씨와 9개월 된 딸 멜라니. 오요셉 기자

최근 러시아의 무차별 포격으로 민간인의 희생이 급증하고 있어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난민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살 딸 아냐와 국경을 넘은 이브제냐씨는 "최근 들어 폭격이 매일 계속 됐다"며 "여러 날을 지하실에 숨어있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딸과 루마니아로 건너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브제냐씨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 지 전혀 알지 못하고, 굉장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며 "오직 바라는 건 딸과 함께 안전한 곳에 있길 바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15년 동안 어린이 병원 의사로 일해온 만큼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섬길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브게냐씨의 딸 아냐가 취재진의 마이크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오요셉 기자

한편,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도움과 연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시레트 국경 검문소 앞엔 약 2백 미터 가량 난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 단체들의 부스들이 연이어 설치돼 있다.

개신교계와 루마니아 정교회 등 종교단체를 비롯해 시민단체와 국제구호기구 등 다양한 단체들이 무료 급식과 방한 용품 지급, 쉼터 제공 등의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따듯한 격려와 환영 인사에 우크라이나 난민들 또한 잠시 전쟁의 그늘을 벗고 미소를 되찾는 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장 한재성 선교사는 "아픈 사람과 함께 울어주고, 피란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해주는 따듯한 한마디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된다"며 "한국에서도 계속 관심을 갖고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루마니아 접경지역으로 실사단을 파견한 한국교회봉사단은 시레트 지역 난민들을 돕는 현장 활동과 더불어 우크라이나 내부로 의약품과 생필품, 식재료, 침낭 등을 전달하는 등 본격적인 지원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시레트 국경 검문소에서 무료급식 봉사 중인 루마니아 교회 쳥년 연합회 봉사자들. 오요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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