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16일 오전 8시쯤 각각 이날 오찬 회동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대선 직후 물밑 조율 끝에 지난 14일 이날 오찬 회동이 예정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통상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이 사전에 의제 조율을 마무리하고 진행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찬 회동을 불과 4시간 앞두고 막판 불발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양측의 회동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MB 사면' 문제가 도마에 오르며 회동 불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 문 대통령은 건강 악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당시 야권 대선후보였던 윤 당선인 캠프 내부에선 현 정권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조차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고령으로 건강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MB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대선 승리 직후 윤 당선인 측에선 MB 사면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제는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 양자 회동을 앞두고 MB 사면 여부를 공식적인 테이블에 올리면서 논란이 증폭됐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인수위를 장악한 MB계가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사면은 부탁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라며 "어쨌든 현 대통령의 고유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는데 굳이 이런 걸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도 통화에서 "윤 당선인의 1호 공약이 '코로나 대응책'일 정도로 지금 최대 현안이 코로나 문제"라며 "당선인과 현 대통령의 첫 회동이면 국가적 난제를 테이블에 올려야지 민생과 관련도 없는 사면이 왜 나온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소속 재선의원은 통화에서 "사면 문제가 정치적 거래로 비춰지면 안 된다"며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현직 대통령 측근과 끼워 판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청와대 근무경험이 있는 한 당내 관계자도 "이번 회동은 MB계 당선인의 측근들이 망친 것"이라며 "사면은 누가 언론에 대고 떠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조용히 물밑에서 진행하다가 전격적으로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양자 회동이 무산된 게 아니라 추가적으로 의제 조율을 통해 재차 회동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태다. 그러나 정권 교체 시기에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예민한 문제로 양측의 신경전이 표면화되면서 쉽사리 봉합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이 있는 MB정권의 출신 인사들이 사면을 강요하는 상황에 대해 문 대통령 측의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 전직 선대본부 관계자는 "인수위 초반부터 MB 사면이나 청와대 이전 등 지엽적인 문제들이 오히려 주목을 받고 있다"며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걸다가 초반부터 위기를 맞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