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웅일까?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아파트가 추락한 로켓의 파편에 맞아 크게 파손된 모습.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해 주거지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 사상자와 민간 시설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진행 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월한 군사력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으나 예상보다 강한 우크라이나의 저항 등에 부딪히면서 진군 속도에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군은 침공 초기 군사기지 등 주요시설에 초점을 맞춰 미사일 공격 등을 진행했으나 전선 상황이 여의치 않자 민간인 밀집한 지역이나 시설까지 타격하고 있다. 
 
역대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지난 16일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숨진 민간인 수가 726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어린이 52명이 포함됐다.
 
같은 기간 부상당한 민간인은 어린이 63명을 포함해 1174명으로 파악됐다.
 
특히 마리우폴 같이 러시아 군에 의해 포위된 지역에서는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기 어려워 실제 사상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우려했다. 
 
또, 전쟁의 참화를 피해 해외로 떠난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수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폴란드 국경마을 메디카 실내경기장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피란민 임시 수용소의 15일(현지시간)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포위한 채 총공세에 나서고 있어 키이우 외곽에서는 격렬한 시가전이 수일 째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의 방어선이 속속 무너지고 있어 머지않아 러시아군 탱크와 병력이 키이우 시내로 밀고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키이우 시민 300만 명 가운데 현재 절반가량이 도시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으나 도심에서의 시가전이 본격화할 경우 인명 피해는 엄청난 규모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투 중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측은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였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대해서는 포기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안, 돈바스 지역의 친러 세력 독립 등에 대해서는 줄다리기를 지속중이다. 
 
이런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 각국을 향해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초 유럽의회와 영국, 캐나다 의회에서 결사항전 의지와 지원을 호소하는 화상 연설을 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의 '방문자 센터 오디토리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위해 대형 화면에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지난 16일에는 미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다'는 연설 문구를 인용해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전쟁발발 직후 수도 키이우에 남아 결사항전 의지를 담은 동영상을 전파하는 등 침략자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용감한 지도자의 모습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함락 위기에 몰린 수도를 지키며 군용 티셔츠 차림으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은 분명 용감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막지 못한 채 국민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내몰았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지도자도 영웅도 될 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친 서방정책을 추진해 온 대표적인 인물로 NATO 가입 의지를 구체화하면서 결국 푸틴 대통령에게 무자비한 침공의 빌미를 제공했다.
 
경제발전과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 서방정책을 추진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자국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한쪽으로 쏠린 외교력은 아쉬운 부분이다.
 
러시아가 침공하면 서방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판단과는 달리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세계대전 확산 가능성을 우려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경제적인 측면 등에만 한정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나토 가입은 물 건너갔다고 인정하면서 자국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서방에 요청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전쟁으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이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 국토 파괴는 물론 휴전 조건으로 돈바스 지역의 영토마저 축소될 지경에 놓이게 됐다.
 
이웃국가나 외부세력이 영토 야욕 등의 목적으로 자국을 침공해 온다면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맞서 싸워야한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호전적인 자신의 상대 푸틴이 역사적·지정학적으로 자국 안보와 직결된 우크라이나의 서방화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물론 이번 전쟁을 이용해 20세기 냉전시대 당시의 막강했던 소련 제국 시절로 회귀하기 위해 이웃국가를 유린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독재자이자 침략자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하지만 아무리 인기가 많고 능력이 있는 지도자라도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막지 못하고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 내몰았다면 결코 훌륭한 인물도 영웅도 될 수 없다. 
 
이 세상 어떤 전쟁도 시작과 동시에 파괴가 뒤따를 뿐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측면이 강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상황으로 볼 때 결코 남의 얘기가 될 수 없다. 
 
한반도는 휴전 상태일 뿐 아직 종전이 선언되지 않아 우리 역시 항상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살고 있다. 
 
티브이 뉴스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전투 상황이나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고단한 모습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우리가 겪게 될 모습 그 자체다. 
 
보수진영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 강원 철원군 육군 3사단 백골부대 OP(관측소)를 찾아 전방지역을 바라보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쟁 징후가 농후해질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단 한 발의 미사일로도 한반도 전역이 불바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 내모는 지도자는 결코 영웅일 수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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