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캠퍼스는 '활짝' 총학은 문조차 못 연 대학…'학생자치 실종'

코로나19 막혔던 캠퍼스 열렸지만, '학생자치' 위태
서울 주요 대학 15곳 중 10곳 총학생회 구성에 난항
'코로나 학번' 주축 되면 학생회 구성 더 어려워질 수도

대면 수업 맞이한 대학생들. 연합뉴스
"관심이 없어요. 학생회장 투표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코로나19로 막혔던 대학 캠퍼스에 학생들이 돌아왔다. 캠퍼스 곳곳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섰고, 학생들은 다음 수업 강의실로 이동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간 비대면으로 진행되던 수업들이 대면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약 2년 만에 대학은 활기를 찾았다.
 
개강을 맞아 서울 주요 대학들이 이미 몇 차례 무산된 총학생회 구성을 위해 다시 선거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수 학교에서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총학 구성이 순탄치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투표율 미달'과 '후보자 미등록' 등의 이유로 후보자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한 대학이 늘어나면서 '학생 자치'가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1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학가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총학생회 구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관심이 없다'는 등의 반응을 주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서울 시내 주요 대학 15곳 중 서울대·연세대·서강대·중앙대·서울시립대·건국대·동국대·홍익대·이화여대·국민대 10곳이 2022학년도 총학을 구성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인스타그램 캡처
이미 국민대와 이화여대는 지난 14일과 16일에 각각 추천인 수 미달로 입후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후보자 미등록'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 총학을 구성하지 못한 나머지 8개 대학은 3월 들어 재차 선거를 진행하고 있거나 예정 상태다.

총학을 구성 못한 대학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나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등이 임시로 학생 대표기구 기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만큼 '학생자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데다 코로나19로 무관심이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 찾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캠퍼스 곳곳엔 총학생회 선거를 알리는 공보물이 붙어 있었다. 후보들의 약력이 쓰인 포스터도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해당 포스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날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만난 4학년 하모씨는 총학생회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다음주가 투표였는지 몰랐다. 온라인 투표면 참여하고 아니면 안하겠다"라고 답했다. 신입생인 김모씨도 "학생회관 앞에서 선거 유세 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주변도 그렇고 관심이 없다"며 "세대가 많이 바뀌지 않았나. 개인주의로 바뀌면서 더 관심을 안 가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오는 21일부터 25일까지 총학생회 본투표를 앞두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 진행되는 서울대 총학생회 정기선거는 재선거를 포함해 투표율 미달로 최근 5번 연속으로 무산됐다.
 
같은 날 찾은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신입생 천모씨는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는지 몰랐다"며 "총학생회 역할이 무엇인지 역시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학생회 구성이 어려워진 배경에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소속감이 줄어들고, 학생회의 역할 자체를 알지 못하는 체험의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대생인 조모씨는 "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프로젝트나 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
학생들은 학생 자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이유로 취업난을 꼽기도 했다. 조씨는 "취업이나 각종 시험 등 각자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주변에 관심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고 비대위 체제가 이어질 경우, 학교 측에 학생 의견을 전달할 구심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한국외대 김나현 전 총학회장은 "학교 측은 비대위와 총학의 대표성을 달리 인정한다"며 "예를 들어 학칙으로 '회의체 학생위원은 학생회장이다'라고 돼 있으면 '비대위원장은 제외된다'는 식으로 배제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향후 '학생자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전 총학회장은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20학번 학생들이 앞으로 학생회를 이어갈 동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학에서 동기들과 실제로 만난 적도 별로 없고 실제 대학 캠퍼스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내 목소리를 모아 학교에 전달하는 역할의 중심은 여전히 총학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립대 류창현 총학생회 후보자는 "작년 11월 정기선거에 출마했다가 투표율 미달로 낙선했다. 투표율이 18% 정도 나올 정도로 학생들이 관심이 없었지만 총학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대표기구란 점에서 필요하다"며 "올해는 총장 선출이 있는 해인 만큼 총학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년 동안 코로나 대유행으로 아무것도 못했다. 선배 후배 간 교류가 완전히 끊길 위기인데 총학생회가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해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번 연도는 학생 자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학생자치 실종을 우려하고 있다. 고려대 김윤태 사회학과 교수는 "생존경쟁·각자도생의 시대인 탓에 학생들이 학생회 선거나 자치 활동 등 공적인 문제 관심을 갖기 어렵다"며 "더불어 학과 소속감도 줄어 전통적인 대학 사회의 공론장이 붕괴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 문제가 해결돼 학생들이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학생자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며 "대학 내 자치 활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지원을 주는 식으로 공론장을 활성화 할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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