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수사와 국정농단 특검 등 굵직굵직한 수사로 연결된 두 사람의 '악연'은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박 전 대통령이 사면·석방되는 기이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사면 결정 직후 '윤석열의 아킬레스건을 노렸다', '야권 분열을 노린 술책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 비판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입지가 커졌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석방이 빨라졌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가정에 다다르게 된다.
"사람에 충성 않는다"… 尹 데뷔시킨 국정원 댓글수사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불거진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부터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의 본격적인 악연은 시작됐다.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게 된 윤 당선인(당시 여주지청장)은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을 진행하다 수사팀에서 전격 배제된다.당시 검찰은 윤 당선인이 상부에 사전 보고 없이 체포·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윤 당선인 본인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로 맞불을 놨다. 특히 실세였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수사 외압의 실체로 지목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정면충돌도 피하지 않았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윤 당선인을 향해 "하극상의 행태는 법 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검찰의 지휘 체계가 마치 대지진처럼 붕괴돼 실로 충격적"이라며 맹폭을 가했다. 현재 권력에 맞선 대가는 비쌌다. 윤 당선인은 국정감사 이후 정직 등의 징계를 받았고, 지방을 전전하며 좌천의 길을 걷는다.
연이은 좌천 속… 朴 국정농단 특검으로 다시 등장
대구고검과 대전고검 등에서 평검사로 지내던 윤 당선인은 2016년 터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다시 국민적 주목을 받게 됐다.당시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으로 윤 당선인이 직접 언급되기도 했지만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미 이번 정권 초기 칼을 들어 (박 전 대통령에게) 상처를 낸 사람인데, 정권의 힘이 다 떨어진 이런 상황에 또 같은 대상을 놓고 칼을 든다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며 고사 의사를 강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영수 특검은 특검보를 정하기에 앞서 윤 당선인을 설득해, 수사팀장에 먼저 임명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수사 실무를 지휘하고 20명에 달하는 파견 검사를 통솔하는 자리로 사실상 특검의 2인자 자리였다.
그렇게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선 윤 당선인은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에게 로비를 한 의혹이 제기된 삼성에 대한 수사를 중점적으로 맡았고, 이재용 부회장을 이듬해 12월, 구속영장 청구 2차례 만에 뇌물죄로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이후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에 큰 역할을 했고, 최순실 씨 구속, 박 전 대통령 탄핵·구속 등으로 연결됐다. 윤 당선인은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이끈 공적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악연 속 인연? … 尹이 커지자 朴이 석방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등을 내리 맡으며 이어졌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윤 당선인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와 충돌했다. 극심한 갈등 속에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곧바로 자신이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는 새누리당의 후신, 국민의힘에 입당해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다.정권교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윤 당선인의 훈장이나 다름없던 특검 경력은 원죄로 뒤집혔다.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진두 지휘했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던 윤 당선인은 전통 보수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 참여 선언 이후부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7월 대구를 찾아서는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이 없지 않다. 저 역시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의 심정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라고 미안함을 나타냈다. "대통령이 헌법이 부여한 고귀한 권한을 좋은 뜻에서, 국민 통합을 위해서 잘 행사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8.15 특별 사면의 필요성을 꺼내기도 했다.
그해 11월 5일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이같은 시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한달여 뒤인 12월 24일 박 전 대통령은 4년 9개월의 수감 생활 끝에 특별사면됐다.
당시 정부는 사면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악화를 언급했지만, 야권 내에선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해 윤 당선인을 흔들고 야권 지지층을 분열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분명한 사실은 윤 당선인의 정치적 입지가 커지면서 박 전 대통령이 석방이 예상보다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 때문에 수감되고 윤 당선이 때문에 풀려났다는 호사가들의 분석은 지금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적과도 같은 악연에서 한배를 탄 동반자 관계로 뒤집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또 어떤 전환점을 맞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